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중고등부] 이사야를 통해 마주하는 나

20191006 청파교회 중고등부 설교

이사야를 통해 마주하는 나

<이사야 52장13절 - 53장12절>

13. "나의 종이 매사에 형통할 것이니, 그가 받들어 높임을 받고, 크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14. 전에는 그의 얼굴이 남들보다 더 안 되어 보였고,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상해서, 그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놀랐다.
15. 이제는 그가 많은 이방 나라를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 앞에서 입을 다물 것이다. 왕들은 이제까지 듣지도 못한 일들을 볼 것이며, 아무도 말하여 주지 않은 일들을 볼 것이다.“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10. 주님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님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11.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기회는 위기를 통해 온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잘 지냈어요? 요즘 지낼 만 하세요? 그리고 요즘 청파 중고등부 분위기 괜찮나요? 최근 중고등부 선생님 몇 분이 자리를 비웠는데, 그분들의 빈자리가 클 겁니다. 그래서 이거 “중고등부의 위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러분!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가 창조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요. 

박노해 시인도 목사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도 “기회는 위기를 통해 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소중한 이 “시련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까지 말했어요.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세 분의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게 됐죠. 아마 여러분은 학교나 교회에서 ‘선생님’하면 뭔가 특별하고 뭔가 대단해 보인다고 느낄 수 있는데요. 뭐 물론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저는 중고등부에 갑자기 생긴 이 세 선생님의 공석을 통해 여러분이 함께 느낄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여러분의 선생님들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삶’을 살아내고 있어요. ‘각자가 만나야 될 하나님’과 ‘각자가 걸어야 할 신앙의 여정’이 있다는 걸, 이 세 분의 선생님이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자세한 것까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럴 겁니다. 우리 ‘임창국 선생님’도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뭔가 새롭고 낯선 시도가 필요했을 테고 그래서 우리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서 타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최연실 선생님’은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어렵게 온 기회를 붙잡아 낯선 나라에 나가 자신을 내던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러 가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천승호 선생님’은 우연히 닥친 신체의 고난으로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는 계기를 갖고 계신 것 아닐까 생각해 보는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책임감 있게 이 자리를 지켜내시는 우리 ‘장의림, 이부용, 박수민 선생님’은 ‘자신의 몫’을 살고 있지 않는 거냐? 그렇지 않죠. 이 세 분의 빈자리까지 메꾸며 어려움 가운데 이 현장을 지켜내시는 남은 선생님들만의 ‘신앙의 여정’이 또 있으신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최근 갑자기 여러 선생님들의 공석으로 마치 중고등부에 어떤 ‘위기’가 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번 계기로 “아, 우리 선생님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삶을 살아 내고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네요. 

이스라엘 민족 해방

자 그럼 이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할게요. 여러분,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먼저 경험했던 탈출 이야기가 뭔 줄 아나요?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애굽’은 지금의 어느 나라를 가리킬까요? ‘이집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은 이미 그 말 속에 ‘탈출+애굽’ 즉,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라는 뜻이 담겨져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두 번째 탈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게 언제인지 아는 친구 있나요? ‘바빌론 탈출’ 때예요. 정확히 말하면, ‘탈출’이라기 보단 ‘해방’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텐데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크게 두 번 노예 생활을 했는데, 첫 번째가 ‘이집트’였고, 두 번째가 ‘바빌론(바빌로니아)’이었어요.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이사야 52-53장은 바로 이 두 번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시온(Zion)의 의미

여러분, 혹시 ‘시온(Zion)’이라는 말은 들어봤나요? 무슨 ‘아이돌(idol)’ 이름 같기도 한데. 이 ‘시온’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러 단어 가운데, 중요한 단어 중 하나예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 ‘시온’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친구 있나요? ‘시온’은 지명(地名)이예요. 땅의 이름을 말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어떤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시온’이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는데, 아마 여러분은 이 ‘시온’이라는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잘 들어보진 못했을 거예요. 근데 이 ‘시온’이라는 말에 뭔가 ‘시원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션-션”!! 그래서 이 ‘시온’이라는 말에는 ‘회복’ 또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해방된 이스라엘의 삶

왜 갑자기 여러분께 ‘시온 이야기’를 드렸냐면, ‘이스라엘 민족’이 ‘시온’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이 바로 이 ‘이사야서’ 말씀에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노예생활 즉, 바빌론의 ‘빵-셔틀’만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젠 ‘바빌론의 통치’에서 벗어나 ‘시온’을 향해 나아감으로 점점 ‘회복’되게 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어딘가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무슨 말인지 싶을 텐데. 쉽게 말해, 여러분이 ‘학교’에 하루 종일 갇혀 있다가 ‘하교 시간’이 되면 어떤가요? 학원이 기다려 오히려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란 느낌인가요? 사실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느끼죠. 약간의 ‘자유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랜 시간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을 거예요. 자유를 얻게 됐다는 말입니다. 맨날 어떤 친구의 ‘셔틀’로만 살다가, 갑자기 어떤 ‘큰 존재’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기분은 어떨까요? 아마 다른 건 몰라도,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날들’을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이 ‘새로운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새로운 삶’이 아니라는 데에 있어요. 왜 우리는 생각하길, ‘새로운 삶’은 뭔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든 게 허용된 어떤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데, 이사야가 보여주는 ‘새 삶’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고난 받는 종의 역할

오늘 본문이 말하는 ‘새로운 삶’은 좀 특별한데, 이 ‘새 삶’은 ‘종’이 되는 삶을 말해요. 물론 딸랑딸랑 ‘종(Bell)’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종’ 같은 말을 들으면 거부반응부터 들지 않나요? 사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군가의 ‘종’이 되기보다, ‘왕 혹은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인사(Insider)’나 ‘일진’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죠. 그건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종’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을 향해 ‘새로운 삶’을 살 되 ‘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바빌론에 있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겠어요. 왜냐면, 이래나 저래나 똑같이 ‘노예의 삶’인데, 바빌론에 있었으면 걸어 나오는 수고 정도는 안 해도 됐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사야가 말하는 ‘종’은 좀 다른 ‘종’을 말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난을 받는 종’의 모습을 말하는데요. 이 ‘고난 받는 종’은 ‘고통 받는 종’과는 달라요. 이 종은 뭇 민족의 ‘빛’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해, 고통 가운데 있는 이의 마음을 감싸주고 또 노예나 포로가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사람을 일컫는 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내가 아파본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것, 내가 상처를 받아 봤기에 누군가의 상처를 아주 가깝게 느끼는 것, 또 내가 어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는데 그것에서 벗어난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 이런 것들이 ‘고난 받는 종’이 해야 할 몫인 거예요. 

고난 받는 종이 받는 유익

자, 누가 이사야 53장3절 읽어줄래요? 옆 사람이 4절, 그 옆 사람이 5절 읽어봐 주세요. 여러분, 혹시 여기서 묘사하는 사람이 누군지 떠오르지 않나요? 예수 그리스도예요. 우리는 나중에 와서야 여기에 묘사된 분이 예수님인 걸 알게 됐지만, 아마 이사야가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아마 예수님을 염두 해 두고 쓰진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이사야가 묘사한 ‘고난 받는 종’이 ‘예수님’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게 기록되었다는 건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에요. 

여러분, 결국 이사야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어떤 분이었다고 말하려고 하기보다, 우리도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으로써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아픈 걸 싫어하죠. 아프고 상처 입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때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치기도 하고 또 원하지 않는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해요. 

그러나 ‘고난’을 우리 마음(내면)에 잘 받아들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돼요.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유연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겁니다. 우리를 둘러싼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기도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당할수록,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도울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 없는 삶’을 보장하지 않았어요. 보험을 팔지 않으셨어요. 여러분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삶의 어려움은 늘 있기 마련이나, 어려움을 많이 겪을수록 나를 돕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 많이 느끼고, 또 그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이 다른 친구를 이해하고 돕는 좋은 손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행동에 옮겨 보자고요. 함께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