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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창세기 (8)] 신비와 이성 사이에서

20220204 청파교회 새벽설교

 

신비와 이성 사이에서 

 

<창세기 47장 23-26절> 

 

23. 요셉이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제, 내가 당신들의 몸과 당신들의 밭을 사서, 바로께 바쳤소. 여기에 씨앗이 있소. 당신들은 이것을 밭에 뿌리시오. 

24. 곡식을 거둘 때에, 거둔 것에서 오분의 일을 바로께 바치고, 나머지 오분의 사는 당신들이 가지시오. 거기에서 밭에 뿌릴 씨앗을 따로 떼어 놓으면, 그 남는 것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안과 당신들 자식들의 먹거리가 될 것이오." 

25. 백성들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우리의 목숨을 건져 주셨습니다. 어른께서 우리를 어여삐 보시면, 우리는 기꺼이 바로의 종이 되겠습니다." 

26. 요셉이 이렇게 이집트의 토지법 곧 밭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바치는 법을 만들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법은 유효하다. 다만, 제사장의 땅만은 바로의 것이 되지 않았다.

 

 

기근을 통한 운명적인 만남

 

오늘 이야기는 바로가 꾸었던 꿈의 일부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7년이라는 풍년의 기간이 지나고, 7년이라는 흉년의 기간이 도래할 것을 예견했습니다. 처음 7년 동안, 이집트는 부유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7년 동안은 몹시 궁핍했습니다. 가나안과 이집트 할 것이 땅 전역이 가뭄과 궁핍에 시달렸습니다. 요셉의 가족인 야곱과 그의 형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은 기근으로 몹시 굶주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길을 찾아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 기근으로부터 시작된 어떤 이끌림으로 인해, 야곱 일행과 요셉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7장은 바로 이 극적인 만남이 있고 난 후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은 바로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가족을 환대해주었고, 그들에게 거주할 땅뿐만 아니라 먹을 것까지 잘 챙겨주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도래하기 전의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 적대적인 나라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요셉과 백성들의 거래 

 

요셉과 그의 가족의 드라마틱한 만남 이후에도 이집트의 기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화되어갔습니다. 굶주려가는 이집트와 가나안 사람들은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요셉에게로 몰려 들었습니다. 요셉은 난감했을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집트의 거대한 곳간에 쌓여있는 곡식을 사기 위해 먼저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집트와 가나안의 모든 돈이 요셉에게로 몰렸고, 이 돈은 바로의 궁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머니가 다 비어가는 중에도 기근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요셉에게로 몰려 하소연했습니다. 돈이 다 떨어졌는데 우리는 이제 어떻게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요셉은 다시 고민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굶어죽는 꼴을 그저 지켜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엔 자신들의 집짐승을 가져오면 그 집짐승을 받고서 먹거리를 팔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저마다 갖고 있던 집짐승을 요셉에게 가져와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먹거리로 받아갔습니다. 

 

이제 상황이 좀 나아지면 좋으련만, 여전히 가나안과 이집트의 기근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먹거리가 떨어진 사람들은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돈과 집짐승도 모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몸 하나와 자신들의 밭(땅)밖에 없었습니다. 몸과 밭을 바친다는 것은 자신의 전존재를 바치는 것이고,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과 밭을 내놓으며, 먹을 것과 씨앗을 요구했습니다. 요셉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로써 요셉은 이집트에 있는 모든 밭을 사게 되었으며 이집트의 전역을 바로의 소유가 되게 했습니다. 이집트 땅의 모든 소유를 갖게 된 요셉은 이집트를 재분할하여 사람들을 곳곳에 흩어져 정착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토지법을 세우게 되는데, 자신들이 돌보는 밭의 수확물 중 1/5는 바로에게, 4/5는 당신들의 소유로 가져도 되는 법을 재정했습니다. 요셉은 이 혼란의 시기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백성들의 필요도 채우고 또한 궁의 재정도 잘 세울 수 있었습니다. 

 

신비와 이성의 영역

 

요셉은 철저하게 일처리를 했습니다. 냉정해 보일 만큼 일처리를 깔끔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오늘 말씀을 읽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셉은 어째서 흉년으로 인해 굶주린 이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기근으로 야위어 가는 사람들을 무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자기 멋대로 하기에 요셉은 바로가 두려웠을까요? 그렇다 할 근거는 없습니다. 

 

성경 이야기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기근으로 인해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보며, 먹거리를 거저 나눠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사람들의 변덕스런 심리를 알았기 때문일까요? 거저 주고 거저 받는 혜택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연민의 마음이 들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이성적인 사고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존재입니다.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꿈과 동시에,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이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요셉은 돈, 집짐승 그리고 몸과 밭으로 자신의 먹거리를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요셉과 바로의 꿈을 활용하셨던 것처럼 ‘신비의 영역’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또 기근의 상황에서 작은 경제 원리를 적용했던 요셉의 그 ‘합리적인 영역’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신비와 이성’이라는 두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성 너머에 계신 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적극 활용하는 분임을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신비의 영역과 이성의 역영 사이에서 잘 균형을 잡아갈 수 있게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아멘. 

 

 

이작가야의 말씀창고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입니다. 다양한 감수성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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