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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출애굽기 (2)] 바로의 고집스러운 고집을 통해

20220218 청파교회 새벽설교

 

바로의 고집스러운 고집을 통해 

 

<출애굽기 9장 27-30절>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 주께서 옳으셨고, 나와 나의 백성이 옳지 못하였다. 

28. 너는 주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나게 하신 이 천둥소리와 하나님이 내리신 이 우박을 그치게 하여 다오.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 너희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않아도 괜찮다." 

29.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성을 나가는 대로, 나의 손을 들어서 주님께 빌겠습니다. 그러면 천둥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우리 주님의 것임을 임금님께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30.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두 명의 바로 

 

출애굽기 9장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가운데 일부를 보여줍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세력이 커져가는 이스라엘 민족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고, 이 불안감은 백성들의 노동의 강도를 높이는 등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는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날이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이집트의 핍박이 심해지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히브리 민족을 구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일을 도맡아 진행할 지도자가 필요했고, 모세에게 그 역할을 맡깁니다. 자신 없어 하는 모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은 본격적인 이스라엘 민족 구출 작전을 펼치시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바로의 고집 때문입니다.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은 함께 바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이 ‘박해하는 바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였습니다. 사실 ‘요셉이 이집트에 총리로 있을 때의 바로’는 하나님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집트에 요셉이 살던 때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세워지면서 히브리 민족은 박해 받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여섯 가지의 재앙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모세와 아론이 하는 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기로 결심합니다. 먼저 출애굽기 7장과 8장에는 네 가지의 재앙이 등장합니다. 물이 피로 바뀌는 재앙, 개구리가 온 나라를 덮는 재앙, 온 땅의 먼지가 이로 바뀌는 재앙, 집집마다 파리가 들끓는 재앙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9장에서는 세 가지 재앙이 더 등장하는데, 집에 사는 집짐승들이 모두 죽는 재앙, 사람들 사이에 피부병이 도는 재앙, 이집트 땅에 커다란 우박이 떨어지는 재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이집트 땅에 많은 표징과 이적을 행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출7:3) 때문인지 이집트를 단번에 멸하지 않으십니다. 

 

바로의 고집을 계획한 하나님

 

하나님의 재앙과 바로의 고집이 마치 대조를 이루듯 반복해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라는 메시지를 다양한 재앙에 담아 선포하였고, 바로는 재앙을 보면 두려워하다가도 재앙이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집을 부렸습니다. 거리를 두고 성경을 읽는 우리의 시선으로 보자면, 바로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재앙을 시작하기 이전인 출애굽기 7장 3절의 말씀입니다. 바로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주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라는 대목입니다. 바로의 고집을 계획한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왜 그랬던 것일까요? 몇 군데 힌트가 등장하지만, 오늘 본문인 9장 14절과 29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많은 표징과 이적을 통해, 본인만이 참 하나님이고, 세상 어디에도 이 같은 분은 없으며, 온 세상이 주님의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바로의 고집은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극적인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로의 고집조차 사용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상황이 나을 때보다 힘겨울 때 더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밝고 환한 날보다 어둡고 절망적인 날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됩니다. 홀로 남겨질 것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우리는 어떻게 변하던가요?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절박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우리의 망각이나 내 멋대로 하려는 모든 습성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비판 받아 마땅한 바로의 고집조차도 하나님이 써 내려가실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바로의 ‘고집스러운’ 그 고집 덕에 알게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바로의 고집은 바로 자신에게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확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집트 사람들도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열 가지 재앙이 있고나서 바로가 하나님을 믿게 된 건 아닙니다. 그는 탈출하는 히브리 민족을 끝까지 뒤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14장 31절에서도 말하듯이, 바로의 집요한 고집이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주님과 주님의 종 모세를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선함과 거룩한 모습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시작하실 지 또 어떤 대상을 통하여 일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 또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찾아오시고 또 말을 건네십니다. 다만 바로의 고집처럼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통해서도 주님은 계속 일하시겠지만, 앞으로 맞이할 시간에는 주님께서 나의 좋은 모습, 선하고 거룩한 모습을 통해 일하게 해드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선악의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의 시선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아멘!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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