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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출애굽기 (4)] 광야라는 과도기의 시간

20220304 청파교회 새벽설교

 

광야라는 과도기의 시간

 

<출애굽기 21장 1-6절> 

 

1. "네가 백성 앞에서 공포하여야 할 법규는 다음과 같다. 

2. 너희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하고, 일곱 해가 되면, 아무런 몸값을 내지 않고서도 자유의 몸이 된다. 

3. 그가, 혼자 종이 되어 들어왔으면 혼자 나가고, 아내를 데리고 종으로 들어왔으면 아내를 데리고 나간다. 

4. 그러나 그의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서, 그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 아내와 아이들은 주인의 것이므로, 그는 혼자 나간다. 

5. 그러나 그 종이 '나는 나의 주인과 나의 처자를 사랑하므로, 혼자 자유를 얻어 나가지 않겠다' 하고 선언하면, 

6. 주인은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귀를 문이나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뚫는다. 그러면 그는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된다.

 

 

새로운 법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사이에 있는 과도기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광야에서의 시간은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도래하거나 세워지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고 제약하던 이집트의 모든 법규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새로운 법규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했습니다. 이집트 내에서의 때 묻은 규정들은 버리고, 온전하며 구별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야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등장한 규정이 바로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히브리 민족 사이를 강하게 묶어주는 끈 역할을 했습니다.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한 가지 더 정립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법규였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법규 또한 정립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이나 아주 섬세하고 미묘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모든 정황을 파악할 순 없지만 대략적인 삶의 규율들은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 규정들이 오늘 말씀인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세워진 법규들 

 

출애굽기 21장에는 크게 세 가지의 규정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종에 관한 법’이고, 두 번째는 ‘폭력에 관한 법’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소유자의 책임’에 관한 법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법규들이 지금 시대와는 무척 이질감이 있지만, 그래도 히브리 민족은 이 광야 위에서 어떠한 법규들을 새롭게 정립했는지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노예제도는 20세기에 이르러서 거의 모든 국가에서 폐지되었지만, 조선 시대만해도 노예 제도는 존재했습니다. 그렇기에 구약이 기록된 2천 년 전에는 당연히 노예 제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묘하고 우발적인 일들 간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의 명확한 규정은 반드시 필요했을 것입니다. 

 

먼저 남종과 관련된 법규입니다. 주인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몸을 팔았던 노예들을 6년이 지나면 다시 풀어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주인의 집에 계속 머무르려고 할 경우, 그의 귓불을 뚫어 종의 표시로 삼은 후 그를 계속 종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여종의 경우는 남종의 경우와 달리, 가족이 그녀의 값을 치르거나 또는 주인이 여종을 부당하게 대하고 권리를 제한했을 경우에는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법규들은 여종이 주인의 집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고 존중 받는 삶을 보장받게 했습니다. 

 

12절부터는 사형에 처할 범죄들을 다루는데, 특히 무겁게 느껴지는 경우는 부모와 관련된 범죄입니다. 자기의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를 한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했는데, 이 이야기는 구약이 지닌 엄격한 약자 보호에 대한 맥락 안에서 읽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규정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무조건 참아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약해진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8절부터는 신체 상해와 관련된 규정이 등장합니다. 만약 동등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 간에 다툼이 생겼거나 자신의 종을 쳐서 죽게 한 경우 그리고 임신한 여인을 다치게 한 경우에는 부자들에게 유리할 법한 벌금형이 아닌, 자신이 상대에게 입힌 피해를 직접 몸으로 갚는 체형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6절부터는 자신이 소유한 짐승과 관련된 법규가 등장하는데, 자기 소유의 짐승이 누군가를 죽게 만들면 그 짐승은 반드시 죽임을 당하고 또 주인이 자기 짐승의 이 위험한 버릇을 알고서도 방치하게 된다면 짐승의 임자 또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세워진 갖가지 법규들은 철저했으며 냉정할 만큼 엄격하기도 했습니다. 

 

과도기의 시간

 

사실 이러한 법규들은 바빌론의 왕이었던 함무라비의 법전 내용과 비슷한 형태를 띠긴 합니다만, 히브리 민족만의 고유하고 전형적인 강조점 또한 없진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의 법과 땅의 법을 잘 조화시켰습니다.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좀 과하거나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시대가 갖고 있는 문화적 맥락 안에서 균형 잡힌 법규를 세우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서두에서 광야의 시간은 과도기의 시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과도기라는 시간은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세워지는 탄생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밟기 전, 이 과도기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독일의 여성 철학자인 나탈리 크납은 과도기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도기는 삶에서 익숙했던 규칙이 무력화하는 시기다. 그런 시간들은 직선적으로 전개되는, 틀에 박힌 삶의 반경에서는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경험과 깨달음과 느낌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나탈리 크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유영미 옮김, 더크로스, p.56) 

 

우리는 가끔 광야와 같은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이 시간은 우리의 통제 밖에서 이뤄지기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이 과도기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갔습니다. 우리도 우리 일상에 불어 닥친 광야와 같은 시간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깨달음들이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의 위기를 넘겼더니 뒤이어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주님, 믿음을 주셔서 삶의 위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겠습니다. 주님, 거대한 벽 앞에 움츠러들지 않게 하시고, 그 벽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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