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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산티아고 에세이> Day 33. 모든 순간에 살아있었음을 Day 33. 모든 순간에 살아 있었음을 아르주아(Arzua)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 7시간30분 (37.3km) 오늘이 마지막 순례이다. 생-장-피에-드-포르(St-Jean-Pied-de-Port)에서 시작된 여정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de-Compostela)를 맞아 끝을 맺는다. 3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길었던 800Km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이 길을 걷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고 또 이 길을 시작할 때만 해도 완주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곳에 있고 이 길의 마지막 현장에 서 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여러 영혼과 만났다. 그들은 평소 일상에서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8. 공감하는 사랑의 어려움 Day 28. 공감하는 사랑의 어려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 4시간 반 (18.1Km) 1. 오늘은 새로운 친구이자 옛 친구를 다시 만나 걷는다. 가끔 만나 벗을 이뤘던 정아와 그녀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순례자 1인. 그런데 흥미로운 건 정아와 함께 등장한 이 순례자는 내가 까미노를 출발하고 셋째 날 머물던 알베르게에서 잠시 스쳤던 멤버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4주 만인가? 아주 우연히, 우연한 장소에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새로운 친구이자 옛 친구라고 말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순례 막바지에도 까미노는 여전히 만남의 반복이다. 걸음 속도가 비슷한 나와 정아는 걸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나눈..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7. 길들여진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 Day 27. 길들여진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 폰페라다(Ponferrada)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7시간 (22.6Km) 친해지고 싶었다. 상대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어서 빨리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가까워진다는 게 어디 마음처럼 쉬운 일이던가. 모든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거늘. 그런 시간의 바구니 안에는 오해와 상처, 갈등과 같이 유쾌하지 않은 선물도 담겨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늘 새로운 관계에는 불편한 요소들이 없기를 바란다. 이것이 욕심의 마음임을 알면서도 자주, 또 빈번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고심 끝에 그 친구와 함께 이 길고 험한 순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하루 이틀 보고 말 사이가 아..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5. - Day 26. 다 식은 커피 같을 때가 있다 Day 25. - Day 26. 다 식은 커피 같을 때가 있다. 폰세바돈(Foncebadon) – 폰페라다(Ponferrada) : 7시간 (28.4Km) 1.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기분 좋은 출발을 한다. 어제부터 동행이 된 혜영이와 지영 듀오와 출발하는 시간은 달랐지만 늘 그렇듯 길 위에서 마주치면 함께 쉬었고 또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기도 했다. 간밤에 산 미구엘(San Miguel) 한 잔씩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다. 오해를 푸는데 진솔한 대화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십자가 형상이 나타났다. 어디서 봤더라? 산티아고 순례를 준비하며 TV나 책, 인터넷에서 자주 봤던 ‘철의 십자가’였다. 대부분 순례자는 이 ‘철의 십자가’에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4. 내 안에 입력된 채널 편성표 Day 24. 내 안에 입력된 채널 편성표 아스토르가(Astorga) – 폰세바돈(Foncebadon) : 7시간 (28Km) 잠시 스친 인연이 있다. 그녀들은 대전에서 왔는데, 두 사람은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절친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산 세바스타안(San Sebastián)으로 떠난 현정이와 지혜, 오늘 함께 걸을 혜영이와 지영이 그리고 잠깐 마주친 몇몇 순례자들도 절친끼리 까미노에 왔다고 했다. 산티아고에 오는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친한 친구들끼리 함께 걷고 싶은 버킷 리스트도 포함인가 보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주 경험하듯, 절친이 아닌 새로운 멤버와 함께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그녀들과 서로 어색한 듯 아닌 듯 자기만의 가면을 쓰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3. 절박함이 만들어낸 해결책 Day 23. 절박함이 만들어낸 해결책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 아스토르가(Astorga) : 5시간 (24.7Km) 오늘은 아스토르가에 일찍 도착해야만 한다. 며칠 전, 잘못 인출된 돈을 되찾기 위해서다. 사정은 이러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현금이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오랜 순례 기간에 사용할 현금을 모두 뽑아 다닐 순 없기에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찾아서 다닌다. 며칠 전, 바닥난 현금을 충당하기 위해 ATM기로 향했고, 돈을 찾으려는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스페인어 몇 마디가 뜨더니 인출에 실패했던 금액이 통장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가끔 유럽 여행자들이 겪게 되는 일이라고 하던데, 그 일이 내 눈앞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2.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저녁 Day 22.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저녁 레온(León) –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 5시간 (26.7Km) 레온을 기점으로 그간 정을 쌓았던 일행 모두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부어오르는 발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정이와 그의 벗 지혜 그리고 까미노 일정을 짧게 잡고 온 세진이는 스페인 북부 휴양도시인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án)으로 가기로 했다. 두 명의 친구는 안정을 취하기 위해, 다른 한 친구는 다음 일정 진행을 위해 헤어져야 한다. 순례를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출발선에 다시 선 것만 같다. 설렘과 외로움의 감정이 동시에 가슴으로 전해져온다. 그러나 그보다 강한, 어떤 알 수 없는 끌림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며 잔잔히 부..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0 - Day 21. 그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 Day 20. – Day 21. 그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 레온(León) : 9시간 30분 (46.7Km) 동생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모레다. 하지만 지난밤 잠들기 전에 생각이 달라졌다. 이틀에 나눠 걸을 거리를 하루로 단축 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나의 동행들은 레온에 있다. 그리고 나와 그들 사이에는 까마득한 거리가 놓여있다. 레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전인 어스름한 새벽, 나는 왜 무리하면서까지 단번에 그곳으로 넘어가려는지 궁금했다. 질문은 나름 진지했지만, 답은 간단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 시간 속에서 몹시 외롭던 것이다. 더구나 혼자가 된 이때 머물게 된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9.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 Day 19.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 6시간 (23.8Km) 오늘은 동생들과 떨어져 오롯이 혼자이다. 매 끼니와 휴식, 잠드는 순간까지 내가 유일한 나의 벗이 된다. 여행 노선은 각자의 여행 계획과 피로 누적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함께 걷던 나의 동행들은 레온(Leon)으로 미리 건너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예정이다. 며칠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던 오늘 아침, 곤히 자던 동생들이 인기척에 일어나 잘 걷고 있으라며, 곧 다시 만나자며 응원을 건넨다. 잠깐 헤어지는 것이지만 허전함은 숨길 수 없다. 여행에서의 만남은 그 깊이가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7. 길을 잃는 것도 길을 찾는 과정임을 Day 17. 길을 잃는 것도 길을 찾는 과정임을 프로미스타(Frómista)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 : 5시간 (20.9Km) 일행 중 가장 늦은 출발을 한다. 며칠 전부터 생긴 마음의 질병이 이 몸뚱이를 계속 바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마음의 독감이 우울이라면, 시기와 질투는 마음에 쌓인 피로일까 아니면 어떤 결핍일까? 적당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묵직한 마음의 피로감이 오늘 출발에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어깨도 여전히 말썽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며 나름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주인이 돌봐주지 않자 많이 서운한 모양이다. 사지(四肢) 사이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통증을 통해 알려준다. 끈이 문제인가 해서 배낭의 끈을 이리저리 조절해봐도 나아지질 않는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