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수필 113

[에세이] 버릴 경험은 없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지금처럼 약간의 열정과 약간의 비실거림으로 살던 그때. 축구를 좋아했고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았기에 동해시 시골 축구팀 중 한 곳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연습 경기가 있던 날. 윙백인지 미들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포지션에 위치해 있었고, 나에게 온 볼을 크게 돌린다고 최종 수비수에게 패스를 했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상대 공격수가 백패스를 가로챘고 쏜살같이 달리더니 우리 팀 골문의 그물을 흔들었다불곰 같았던 코치님이 나를 부르더니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내 뺨을 후려쳤다. 갈겼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순간 정신이 멍했고 아픔보다는 두려움과 창피함이 몰려왔다.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다시 운동장에 투입되었는데, 바로 정신이 돌아..

Essay 2020.04.07

[에세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와 눈에 띄는 시 한편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처음 읽어본 그의 시는 잔잔하지만 강렬했다. 일본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아이다 미쓰오’의 시다. “그토록 강렬한 삶을 살았으므로 풀은 말라버린 후에도 지나는 이들의 눈을 끄는 것. 꽃은 그저 한 송이 꽃일 뿐이나 혼신을 다해 제 소명을 다한다. 외딴 골짜기에 핀 백합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꽃은 아름다움을 위해 살 뿐인데, 사람은 ‘제 모습 그대로’ 살지 못한다. 토마토가 참외가 되려 한다면 그보다 우스운 일 어디 있을까. 놀라워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 자신을 우스운 꼴로 만들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제나 강한 척할 필요는 없고, 시종일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할..

Essay 2018.02.22

[에세이]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뜨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근본에 있어서 시대와의 불화(不和)이어야 하리라. 사건과 같은 충격 그리고 충격 이후에 비로소 돌출하는 후사건(後事件)이 깨달음의 본모습이 아닐까.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신영복, , 돌베개, p.100-105  자신이 깨뜨려져야 얻어진다는 '깨달음.'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깨어지고 또 깨어졌는가. 우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능동적이어야 하겠지만, 수동적이지 않은 깨달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틀을 깬다는 것이 꽤나 고통스럽기 때..

Essay 2013.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