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수필 116

죽음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주위에 게으르면서도 즉흥적인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과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약속했는데 도저히 나타나질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포기한다. 그런데 포기한 그 순간, 아주 갑작스레 그 친구가 나타난다. 이렇게 게으르고 즉흥적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친구는 결코 약속을 파기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또한 이중인격자다. 게으르지만 성실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렇다...

Salon 2024.10.19

기다림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삶은 곧 기다림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가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를 늘 기다리며 산다. 영화 의 여주인공 평완위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매달 5일을 기다리고, 소설 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고도를 기다리며 소설 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이민족 타타르인들을 매일 같이 기다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를 기다리며 산다. 그런데 기다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많은 에너지가 기다림에 사용된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리느라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림은 다른 많은 일을 하..

Salon 2024.10.17

생각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말에는 정신(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신(생각)이 지나치면 찻잎이 너무 많은 차가 쓴맛을 내는 것처럼 부담스러워진다. 반대로 충분하지 못하면 색이 나지 않고 향도 나지 않는 차처럼 무미건조해진다.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옳은 이야기도 너무 자주 들으면 무뎌진다. 사실 무뎌지기 전에 먼저 부담부터 느낀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체하는 법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더 난감하다.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 낭비에 대한 후회가 몰려온다. 그렇다. 어떠한 내용이 어떠한 형식을 빌려 발화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내용과 형식에 앞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이다. 바른 생각을..

Salon 2024.10.16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경청은 단순히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발생한 사람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섣부르게 단정하는 습관 때문에 빈번히 오역이 일어난다. 집중과 인내. 그리고 어쩌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언어는 고정되지 않는다. 언어에 기준이나 법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준일 뿐이다. 사람의 언어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말랑한 겉바속촉 쿠키와 같다. 인간관계는 결국 겉보다 서로의 속(내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상대방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오역이 발생한다. 그래..

Salon 2024.10.15

청춘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향수는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이르지 못해 떠도는 자를 찾아온다. 혹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떠도는 자는 그 불완전한 존재의 상태를 견디기 위해 향수를 불러오고 향수에 매달린다. 향수에 의지해서 산다."  김연수 작가는 청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라고 말이다. 청춘이야말로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이다. 그렇기에 청춘은 불완전하고 향수에 젖어 사는 자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청춘에게는 늘 가능성이 열려있고 청춘이기에 뭐든 해볼 수 있다. 청춘은 중립지대에 산다. 그럼, 지금..

Salon 2024.10.11

문학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종교에는 관심이 없지만 문학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문학에는 흥미 없지만 종교에는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만약 문학과 종교, 종교와 문학이 서로 다른 게 아니라면? 두 가지 분야 다 인간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분야라면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한 분야를 깊이 판 사람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

Salon 2024.10.06

우화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보르헤스는 어떤 대담에서 사유나 관념보다는 이미지나 우화에 더 끌린다고 말한 바 있는데, 우화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자생적이지 않고 더 본질적인 다른 이야기를 가리킨다." 관념과 사유투성이의 글. 허세가 담긴 글. 그래서 진솔함이 느껴지지 않는 글. 그게 나의 글이다. 나는 글 뒤에 숨는다. 삶도 있는 듯 없는 듯 산다. 글에도 삶이 묻어난다. 사유나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우화를 써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진실은 직선보다 곡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www.youtube.com

Salon 2024.10.05

열정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또 다른 어느 선생님의 말마따나, 열정도 재능이기 때문이다. 고갈되지 않는 열정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이 말이 참 위로가 된다. 열정도 재능이라니.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회색에 가까웠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캐릭터였다. 뜨겁거나 차지 않았다. 그랬던 순간은 찰나와 같았다. 존경하는 선생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며 이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몇 시간을 가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고 글 쓰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나도 욕구는 있어서 함께 책 읽기는 시작했으나 의지가 약하여 수면 속으로 깊이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 의지로만 안 되는 일이 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www.youtube.com

Salon 2024.09.24

주는 것

2024년 9월 23일 월요일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떠다니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바닥에 안착시켜 주었다. 특히 사랑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라는 말에서 그러했다. 그는 사랑은 활동이자 참여이며,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낭만적 사랑에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진 못할 것이다. 정리해 보자. 사랑은 상대방의 일에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일에 동참..

Salon 2024.09.24

나이대

2024년 9월 19일 목요일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인생의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것이더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과 싸우려 하지 말고 함께 놀아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이다. 젊은 시절의 방황이 싫어서 빨리 나이가 들기를 바랐고, 나이가 들어가니 청춘이 아쉬워 시간이 늦게 흐르기를 바랐다. 그래, 같은 강물이 결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법. 앞으로 맞이하게 될 나이대에 반드시 어려움은 찾아오겠지만, 그것이 두렵다고 하여 현재의 행복을 유보할 수는 없다. 지금, 현재, 이-하루가 가져다주는 행복에 다시 눈을 뜰 때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www.youtube.com

Salon 202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