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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산티아고 에세이> Day 31.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Day 31.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페레이로스(Ferreiros) –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 7시간 30분 (32.9Km)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비가 멈춰준 만큼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한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한 아침, 높은 습도로 인해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땀이 흥건하다. 그래도 비로 젖지 않음에 감사하며 힘차게 한 걸음 내딛어본다. 오늘 머물 목적지인 ‘팔라스 델 레이(Palas de Rei)’ 중간쯤 되는 어느 마을 Bar에 들러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한적한 길 위에 딱 하나 있는 Bar여서 그런지 그동안 오가며 스친 순례자들이 모두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과 잠깐의 인사와 담소를 나눈 뒤, 서로 다른 보폭과 목적지로 인해 다시 헤어짐을 갖는다. 여전히 이곳에선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0. 여기 없는 이는 소용없다 Day 30. 여기 없는 이는 소용없다.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페레이로스(Ferreiros) : 7시간30분 (29Km) 까미노는 미팅의 천국이다. 물론 남녀가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만나게 되는 그런 즉석 만남의 미팅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만남(meeting)의 축제, 이것이 ‘길’이라는 뜻의 ‘까미노(Camino)’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이 길을 걸은 지 열흘 쯤 됐을 때였나? 땅만 보며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바로 앞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일본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녀는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부산 아가씨 은경이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 우리는 아주 잠깐 함께 걸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그 .. 더보기
[쓰임 Note] 물러서게 하시는 하나님 20180429 쓰임교회 주일설교 물러서게 하시는 하나님 14. 시드기야 왕은 사람을 보내어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주님의 성전 셋째 문어귀로 데려왔다. 그리고 왕은 예레미야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를 묻겠으니, 아무것도 나에게 숨기지 마시오." 15. 그러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만일 숨김없이 말씀드린다면, 임금님께서는 저를 죽이실 것입니다. 또 제가 임금님께 말씀을 드려도, 임금님께서는 저의 말을 들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16.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은밀히 맹세하였다. "우리에게 목숨을 주신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오. 나는 그대를 죽이지도 않고, 그대의 목숨을 노리는 저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지도 않겠소." 17. 그러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9. 지나간 모든 시간이 기적이었음을 Day 29. 지나간 모든 시간이 기적이었음을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8시간 (32.6Km) 동트기 전 일어나 출발을 서두른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이 과일과 빵으로 배를 채워두기로 한다.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걷는 양을 줄이기로 한 정아는 느지막이 출발하기로 한다. 막 일어난 그녀와 기약 없는 만남을 뒤로한 채, 먼저 문을 나선다. 어제 일(Day.28)의 여파 때문인지 그녀와 함께 머물던 이층침대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감정이란 사람 몸에 오래 머무는 기운인가보다. 생장에서 받은 지도에 의하면, 오늘 높은 언덕을 오르게 된다. 크게 심호흡 한번하고 각오를 다지며 한발 한발 내딛어 본다. 드디어 가파른 산맥의 등장..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8. 공감하는 사랑의 어려움 Day 28. 공감하는 사랑의 어려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 4시간 반 (18.1Km) 1. 오늘은 새로운 친구이자 옛 친구를 다시 만나 걷는다. 가끔 만나 벗을 이뤘던 정아와 그녀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순례자 1인. 그런데 흥미로운 건 정아와 함께 등장한 이 순례자는 내가 까미노를 출발하고 셋째 날 머물던 알베르게에서 잠시 스쳤던 멤버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4주 만인가? 아주 우연히, 우연한 장소에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새로운 친구이자 옛 친구라고 말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순례 막바지에도 까미노는 여전히 만남의 반복이다. 걸음 속도가 비슷한 나와 정아는 걸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나눈..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4. 내 안에 입력된 채널 편성표 Day 24. 내 안에 입력된 채널 편성표 아스토르가(Astorga) – 폰세바돈(Foncebadon) : 7시간 (28Km) 잠시 스친 인연이 있다. 그녀들은 대전에서 왔는데, 두 사람은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절친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산 세바스타안(San Sebastián)으로 떠난 현정이와 지혜, 오늘 함께 걸을 혜영이와 지영이 그리고 잠깐 마주친 몇몇 순례자들도 절친끼리 까미노에 왔다고 했다. 산티아고에 오는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친한 친구들끼리 함께 걷고 싶은 버킷 리스트도 포함인가 보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주 경험하듯, 절친이 아닌 새로운 멤버와 함께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그녀들과 서로 어색한 듯 아닌 듯 자기만의 가면을 쓰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0 - Day 21. 그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 Day 20. – Day 21. 그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 레온(León) : 9시간 30분 (46.7Km) 동생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모레다. 하지만 지난밤 잠들기 전에 생각이 달라졌다. 이틀에 나눠 걸을 거리를 하루로 단축 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나의 동행들은 레온에 있다. 그리고 나와 그들 사이에는 까마득한 거리가 놓여있다. 레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전인 어스름한 새벽, 나는 왜 무리하면서까지 단번에 그곳으로 넘어가려는지 궁금했다. 질문은 나름 진지했지만, 답은 간단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 시간 속에서 몹시 외롭던 것이다. 더구나 혼자가 된 이때 머물게 된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9.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 Day 19.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 6시간 (23.8Km) 오늘은 동생들과 떨어져 오롯이 혼자이다. 매 끼니와 휴식, 잠드는 순간까지 내가 유일한 나의 벗이 된다. 여행 노선은 각자의 여행 계획과 피로 누적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함께 걷던 나의 동행들은 레온(Leon)으로 미리 건너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예정이다. 며칠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던 오늘 아침, 곤히 자던 동생들이 인기척에 일어나 잘 걷고 있으라며, 곧 다시 만나자며 응원을 건넨다. 잠깐 헤어지는 것이지만 허전함은 숨길 수 없다. 여행에서의 만남은 그 깊이가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8. 단순함 속에 담긴 즐거움 Day 18. 단순함 속에 담긴 즐거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 –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6시간30분 (26.6Km) 산티아고 순례가 주는 매력 중 하나는 ‘단순함’이다. 많은 사람이 입을 모으길, 순례를 하다 보면 내면의 혼란들이 잠잠해지고 차분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에겐 적용되지 않는가 보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질문에 까미노에서 얻은 갖가지 경험까지 더해져 혼란은 가중이다. 하지만 이전의 나의 모습과 달랐던 한 가지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났다. 혼란이라는 것이 그것을 경험한 자의 ‘유쾌함’만은 뺏어 가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만큼은 달..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6. 쉬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Day 16. 쉬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 프로미스타(Frómista) : 6시간 (25.5Km) 여전히 발목이 좋지 않은 현정이와 그의 오랜 벗 지혜는 택시를 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할 계획이다. 질량은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보존이 되는 걸까? 오늘은 이 두 친구의 자리를 다른 순례자들이 채우게 됐다. 가끔 길 위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던 한국 순례자 정아, 제영이가 함께 걷게 됐다. 물론 나의 오랜 동행인 세진이도 함께. 아무튼, 오늘 묵었던 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언덕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언덕의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의 향연이다.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단숨에 넘어볼 생각이다. 출발 전 먹어둔 바나나가 한몫 해 주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