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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024년 10월 19일 토요일 "죽음은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큰 질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오는 깨달음은 질문의 형식으로 온다. 죽음은, 유일한 질문이다. 삶의 모든 경험이 바쳐져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질문이다." 죽음은 종착지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가 얻게 될 마지막 대답인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죽음이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라면? 죽음 가까이 간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답이 있어야 하는 하나의 질문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혼란스럽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삶의 경험은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또 삶의 모든 경험이 바쳐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결과물이 죽음이라면 삶을 지속해야 했던 당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래서 사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질문은 답이 있어야 한..

Salon 2024.10.19

죽음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주위에 게으르면서도 즉흥적인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과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약속했는데 도저히 나타나질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포기한다. 그런데 포기한 그 순간, 아주 갑작스레 그 친구가 나타난다. 이렇게 게으르고 즉흥적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친구는 결코 약속을 파기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또한 이중인격자다. 게으르지만 성실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렇다...

Salon 2024.10.19

[청파 Note / 예레미야서 (3)]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와 예배

202401017 청파교회 새벽설교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와 예배   21.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받고 싶은 것은 제사가 아니다. 너희가 번제는 다 태워 내게 바치고 다른 제물은 너희가 먹는다고 하지만, 내가 허락할 터이니, 번제든 무슨 제사든 고기는 다 너희들이나 먹어라. 22. 내가 너희 조상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번제물이나 다른 어떤 희생제물을 바치라고 했더냐? 바치라고 명령이라도 했더냐? 23. 오직 내가 명한 것은 나에게 순종하라는 것, 그러면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 내가 그들에게 명하는 그 길로만 걸어가면, 그들이 잘 될 것이라고 한 것뿐이지 않았더냐?   성전의 참된 의미 오늘 함께..

Note 2024.10.17

기다림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삶은 곧 기다림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가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를 늘 기다리며 산다. 영화 의 여주인공 평완위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매달 5일을 기다리고, 소설 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고도를 기다리며 소설 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이민족 타타르인들을 매일 같이 기다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를 기다리며 산다. 그런데 기다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많은 에너지가 기다림에 사용된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리느라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기다리고 기다림은 다른 많은 일을 하..

Salon 2024.10.17

생각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말에는 정신(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신(생각)이 지나치면 찻잎이 너무 많은 차가 쓴맛을 내는 것처럼 부담스러워진다. 반대로 충분하지 못하면 색이 나지 않고 향도 나지 않는 차처럼 무미건조해진다.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옳은 이야기도 너무 자주 들으면 무뎌진다. 사실 무뎌지기 전에 먼저 부담부터 느낀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체하는 법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더 난감하다.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 낭비에 대한 후회가 몰려온다. 그렇다. 어떠한 내용이 어떠한 형식을 빌려 발화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내용과 형식에 앞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이다. 바른 생각을..

Salon 2024.10.16

사랑

2024년 10월 15일 화요일 "불합리한 충동의 에너지가 항상 더 크다. 사랑은 오랫동안 쌓아온 견고한 합리의 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 반성과 성찰은 그 논리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는데, 합리적 설득을 통해 그 튼튼한 논리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불합리한 충동이며 부조리한 일격인 사랑밖에 없다." (이승우, ) 논쟁으로 사람이 변화되던가. 말다툼으로 상대가 변화되던가. 가끔 있어도, 거의 있지 않다. 사람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생각보다 사람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래서일까?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합리와 논리가 아니다. 그와 반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글쓴이는 사랑은 불합리한..

Salon 2024.10.15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경청은 단순히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발생한 사람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섣부르게 단정하는 습관 때문에 빈번히 오역이 일어난다. 집중과 인내. 그리고 어쩌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언어는 고정되지 않는다. 언어에 기준이나 법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준일 뿐이다. 사람의 언어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말랑한 겉바속촉 쿠키와 같다. 인간관계는 결국 겉보다 서로의 속(내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상대방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오역이 발생한다. 그래..

Salon 2024.10.15

[청파 Note / 예레미야서 (2)]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

202401014 청파교회 새벽설교 마음의 포피를 자르라   1. "이스라엘아, 정말로 네가 돌아오려거든, 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그 역겨운 우상들을 내가 보는 앞에서 버려라. 네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라. 2. 네가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진리와 공평과 정의로 서약하면, 세계 만민이 나 주를 찬양할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복을 베풀 것이다." 3. "참으로 나 주가 말한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아,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아라. 묵은 땅을 갈아엎고서 씨를 뿌려라. 4.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아, 너희는 나 주가 원하는 할례를 받고, 너희 마음의 포피를 잘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처럼 일어나서 너희를 ..

Note 2024.10.13

영원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 문학동네, 2024, p.90) 사랑하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사랑하는 대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미지의 존재가 된다. 모른다는 사실이 불안과 초조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상대방을 모른다는 사실이 왜 불안과 초조를 불러일으키는가. 그 상태를 지속시키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상대를 소유하고 싶고 이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사랑에 빠진 연인은 영원을 약속하지만 영원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영원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한 가지 있긴 하다. 바로 ..

Salon 2024.10.12

성령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한번은 어떤 사람이 버나드 쇼에게 성령이 '성서'를 썼다는 사실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모두 성령이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이란 저자의 의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 책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흥미로운 말이다.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모두 성령이 썼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범위를 확장한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 어떤 책은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덮기도 한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품에 안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

Salon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