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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공부의 시대] 나의 인생, 나의 학문 '유홍준'

[Lumix gx9 / 20mm]

창작과 비평 50주년 기념 <공부의 시대> 명사특강에 다녀왔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소식을 접하고 신청했더니 운 좋게 당첨이 됐나 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출판사 이름과 강사의 이름, 특강 제목이 마음에 들어 신청했다고 할 수 있다. 

 

TV에서 몇 번 뵙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억지로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그곳으로 향했다. 

 

당첨자 우선이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특강 마치고 돌아보니 신청 없이 당일에 온 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명사긴 명산가보다.'

 

기억에 남은 이야기 한 가지를 남겨볼까 한다. 

 

작가 유홍준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체를 갖고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에 대해 감히 공졸을 말하는 이는 없지만 추사 당년에는 모두가 공감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파격적인 서체를 보고 법도를 벗어난 괴기 취미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추사는 어떤 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자에 들으니 제 글씨가 세상 사람의 눈에 크게 괴(怪)하게 보인다고들 하는데 혹 이 글씨를 괴하다고 헐뜯지나 않을지 모르겠소. 요구해 온 서체는 본시 일정한 법칙이 없고 붓이 팔목을 따라 변하며 괴와 기(氣)가 섞여 나와서 이것은 금체(今體)인지 고체(古體)인지 나 역시 알지 못하며, 보는 사람들이 비웃건 꾸지람하건 그것은 그들에게 달린 것이외다. 해명해서 조롱을 면할 수도 없거니와 괴하지 않으면 글씨가 되지 않는 걸 어떡하나요." 

 

그의 글씨체는 당년에 그렇게 인정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대의 안목들은 추사 예술의 진가를 잘 알고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동시대 문인인 유최진(柳最鎭) 추사를 두둔하여 이렇게 말했다. 

 

"추사의 글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怪奇)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妙)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 당장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충분히 곱씹을만한 글이다. 하지만 추사체에 대한 설명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생을 요약이라도 하듯 박규수(1808-1876)는 추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당시의 모더니즘이라 할) 동기창(董其昌)체에 뜻을 두었고, 중세(24세)에 연경을 다녀온 후에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옹방강(翁方綱)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그러나 소동파(蘇東坡), 구양순(歐陽詢) 등등 역대 문필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히면서 대가들의 신수(神髓)를 체득하게 되었고 만년(54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마침내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었으나, 신이 오는 듯, 기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하였다. 그래서 내가 후생 소년들에게 함부로 추사체를 흉내 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작가 유홍준은 "이것이 추사체가 귀양살이 이후에 완성되었다는 학설의 모태다. 추사의 개성적인 서체는 고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익힌 다음에 이룩한 것, 즉 입고출신(入古出新)이기 때문에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법도에 구속받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사를 배우려면 그의 글씨체를 모방하지 말고 그런 수련과 연찬을 배우라고 한 것이다. 박규수의 예술론 행간에는 인생론조차 서려 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작가 유홍준이 말한 추사의 글씨체를 모방하지 말라는 것은 평생 그의 서체를 흉내 내기에만 머물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그래, 인생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공부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추사체의 완성은 추사의 삶에 담겨 있기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추사체가 완성되기 위해 그는 동기창, 옹방강, 소동파, 구양순 등을 거쳤고 이런 배움을 통해 고전을 넘어 창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방과 흉내에 머물지 않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것을 만들어냈다. 

 

이 땅에 태어나 한 가지만 붙잡고 그것에만 내 인생을 걸고 노력할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아 고달프다. 추사처럼 서체에 뜻을 두고 평생 그것을 연마하는데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삶을 부러워만 할 수 없는 법, 우리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만 한다. 

 

우리의 공부는 모방으로 시작해도 좋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최적화된 공간에서 하는 그런 생동감 없는 작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련의 모든 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 위해서는 옛것의 모방이 필요하다. 옛것에서 새로움이 나온다는 '입고출신'이 필요한 것이다. 옛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전 것을 알지 못하고 새로운 것이 나오기 힘들다. 나에게 공감을 주었던 이들의 글을 많이 읽고 흉내 내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전문가의 책을 읽고 그를 만나 그의 방식을 전수받아도 좋다. 우리는 옛것의 매력에 충분히 물들어봐야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나만의 것이기에 모두의 호응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그 사람의 삶을 본다면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진솔한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글 읽기와 글쓰기의 소중함을 알려준 분들이 계신다. 김기석, 김오성, 신영복, 한상봉, 유시민 등 그들의 글에서 묻어나는 냄새가 참 향기롭다. 좋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느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느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닌 '내'가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더 많이, 더 자주 흉내 내도 되겠다. 글을 쓰는 일이든, 글을 읽는 일이든,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든 커피를 내리는 일이든 옛것(체계와 틀)을 충분히 익힐 필요가 있겠다. 그러다 때가 되면 나만의 삶이 담긴 그 무엇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혹 그런 게 없으면 또 어떤가, 그래도 짧은 인생에 있어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 행복했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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