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광장의 조증, 삶의 울증

2016. 12. 29. 02:10Essay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을 반복하고 있다." 이 말을 전혀 다른 자리에서 반복해 들었다. 한번은 청파교회 주일설교를 통해서였고 다른 한번은 팟캐스트 공개방송에서였다. 김목사님께서 설교 중 인용한 이 글귀가 종일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터라 공개방송에서 은수미 전의원이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위 글귀의 전문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을 반복하고 있다. 삶의 울증이 심각할수록 현장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광장의 조증을 갈망한다. 삶의 울증과 광장의 조증 사이의 간격이 넓을수록 광장을 대신하는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인기를 끄는 자는 두테르테나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다. 그들은 마치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 사냥과 검투의 스펙터클이 끊임없이 대중을 흥분시킨다. 삶에 남은 '흥분'은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엄기호,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창비, p.9)

광장에서 타오르는 수십만 촛불들 사이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이 곧 도래할 것 같은 묘한 흥분감에 사로 잡힌다. 일시적인 조증을 경험한다. 하지만 기분 좋은 흥분이 그리 오래 가질 못한다. 순간적인 울증을 경험한다. 울증을 잊기 위해 조증의 흥분을 찾게 되는 묘한 순환의 알고리즘에 빠지게 된다.

사실 엄기호 선생이 말한 이 조증과 울증은 흔한 우리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뜨겁게 사랑했던 열정의 시간이 지나면 냉정의 시간을 선물 받는 게 연인의 사랑 아니던가. 그럼 조증과 울증, 열정과 냉정 사이엔 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이 둘 사이엔 이 둘과 같은 높이로 채울 '나만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 아닐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발상의 전환, 세상과 일상을 연결하는 의미 있는 손짓 하나, 때론 무심한 듯 무뚝뚝한 발걸음 하나가 필요한 것 아닐까. 연인을 향해 타오르던 그 시선을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의 자리로 가져와 나만의 서사를 써내려 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내일은 오늘의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조증과 울증은 신의 선물이고 이 선물의 활용법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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