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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사랑하라 그리고 살라

20170101 쓰임교회 주일설교

 

사랑하라, 그리고 살라

 

<전도서 3장 1-13절>

 

1.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5.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6.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9.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10.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11.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12.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13.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Lumix gx9 / 20mm]

새롭게 떠오른 정유년(丁酉年)의 해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어느 덧 2016년의 해가 지고 2017년 정유년(丁酉年)의 해가 떠올랐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를 하셨고 또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셨는지요? 사적인 영역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 테고 공적인 영역에서도 많은 일들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작년 말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사고들은 우리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별개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내 부조리한 일들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의미와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갔었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작은 불빛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처럼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이 땅의 정의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생명이 숨 쉬는 땅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묵은 것을 갈아엎어야 하듯이 우리는 드러난 불의들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2017년 한해는 부디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이 사회 위에 생명력 있는 일들이 생겨나고 또 생명력 넘치는 일들을 직접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삶에는 때가 있다!

 

새해 첫 주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본문에도 여러 암시가 나타나있듯이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이 저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초대교회 당시 대다수의 교부들은 솔로몬의 전도서의 저자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루터 이후 학자들 가운데서는 본서의 저자를 솔로몬이 아닌 ‘벤 시락(Ben Sirach)’이라는 인물로 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익명의 저자가 솔로몬의 이름을 빌려 기록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정확히 누구이건 간에 전도서는 지금의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그 가운데 오늘의 본문인 전도서 3장은 삶에는 때가 있다며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인지 솔로몬의 입을 통해 다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본서의 저자를 오랜 전통을 따라 솔로몬이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모두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심을 때가 있으면 뽑아야 할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으며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통곡할 때가 있으면 기뻐 춤출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고 합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찢을 때도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삶의 여러 경우를 이야기 하느라 말이 좀 길어졌습니다. 이렇게 장황한 삶의 때를 기록한 솔로몬은 무슨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요? 솔로몬이 이처럼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해 삶의 무상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것 이면에는 생명력 있는 삶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생명력 넘치는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많은 돈과 높은 지위, 막대한 권력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삶을 말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은 그것을 경험한 겁니다. 자신이 가진 재산과 직위는 하나님이 원하는 삶과 무관함을 느낀 것입니다. 그는 한 국가의 왕이었습니다.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삶의 무상함에 대해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평범한 행복을 바라는 인생

 

솔로몬은 삶의 모든 때를 이야기하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보탭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9-10).” 솔로몬은 사람이 얼마나 애를 쓴다고 해서 하늘의 일을 더하거나 덜하게 할 수 있겠냐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저 되는대로 막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욕심 없이 살아내는 게 정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수고할 몫을 기꺼이 짊어지며 사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 아닐까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평범한 행복’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잡한 듯해도 사람의 삶이란 거기서 거기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그걸 누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행복이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은 언제나 행복을 지연하며 살도록 강요한다. 그 체제는 늘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야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만족함 표정을 짓는 사람들은 '패배자'라는 오명을 쓰게 마련이다. 

 

평범한 행복, 성경은 그것을 자기가 심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또 그 열매를 거두어 먹고 사는 것으로 표상했다. 삶이 그러하면 되지 않겠는가? 아,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평화로운 삶을 박탈당한 이들이 너무 많다.” / 김기석, <흔들리며 걷는 길>, 포이에마, p.268

 

‘행복’이란 정말 이런 것 아닐까요? 자기가 심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또 그 열매를 거두어 먹고 사는 것!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이 뭔가 거창한 행복입니까? 정말 바라는 것이 그러한 것들입니까? 우리의 욕망을 모두 이루며 살면 정말 행복할까요?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에너지 없이 살기도 어렵지만 욕망은 너무도 강력하기에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면 욕심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현재, 바로 지금 스스로를 인식하며 현재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김기석 목사의 말처럼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는 행복을 지연하며 살도록 강요받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간의 관성을 끊기 위한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을 누리는 하나님의 은총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의 마지막 세 구절에 바로 이러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11-13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11-13).” 솔로몬은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의 처음과 끝을 다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삶의 고백입니다. 깨달음 뒤에 오는 또렷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의 고백에 우리 모두는 마음으로 귀 기울게 됩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이것 말고 우리가 더 바랄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이것 이상을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에 따라 삶의 모양새는 다르겠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 인생의 크기는 모두 동일합니다. 그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밖에 없습니다. 

 

[Lumix gx9 / 20mm]

삶에 맞서는 용기

 

그러나 우리가 혼동해서는 안 될 게 있습니다.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지 않고 만족하며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 삶에는 부딪쳐야 하는 일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경우로 나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는 자기 스스로를 억압하고 옥죄는 것들에 관해서는 용기를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매순간 화내고 성질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억압하고 억누르며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 앞에 정직한 것이고 이것은 곧 하나님이 사랑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가정이나 교회, 일터, 사회에서 겪는 부조리와 불의에 관해 저항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일은 신앙과 배척되는 거라 여깁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독일 튀빙겐 대학 신학 교수였던 ‘한스 큉’의 이야기를 빌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마태오의 복음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 심령의 가난함을 의식하고 신 앞에 엎드린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배고픈 사람들만 가리키지 않고 우는 사람,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 이용당하고 조롱당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았을 때 소외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 부르시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심한 갈등과 죄의식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도 함께 부르신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수와 종류는 사실상 무한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 프란치스코, 스칼파리,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바다출판사, p.178-179

 

복음서에서 복 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마 5:3)은 단순히 배고픈 사람만을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슬피 우는 사람,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 이용당하고 조롱당하는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과 마음 깊은 곳에서도 심한 갈등과 죄의식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 모두를 칭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위로하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그분의 팔과 다리가 될 우리의 도움의 손길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명과 정의가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 발자국 내 딛어야 합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살라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2016년 쓰임교회 표어를 ‘믿으라, 그리고 살라’로 정했었습니다. 2017년은 지난 표어를 이어 ‘사랑하라, 그리고 살라’로 정했습니다. 올 한해는 하나님을 풍성히 사랑하시고 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시고 또 아픔 가운데 있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행복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일상을 초월하고) 또 나의 있음과 함께(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고), 나와 함께 하는 이 땅위의 수많은 이웃과 함께(타자를 중심에 두고)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올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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