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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우리는 미지의 그 무엇을 추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p.202

 

나는 고상한 사람일까? 이런 시답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걸 보니 또 ‘진지 열매’를 삼켰나 보다. 어쨌든 다시. 사람은 고상해지고 싶다 하여 스스로 고상해질 수 있는 존재일까?

 

한 여성 앞에서 진짜 원하는 바만 쏙 빼고 에두른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본심을 들키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 당황해한다. 마치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그 여성 앞에서 진짜 하고 싶던 이야기는 은밀한 이야기들이다.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면 많이 민망해질 수 있기에 꽁꽁 묶어두기 바쁘다. 혹시 새어 나오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고 막고 있지만 그러다 툭 새어 나오기 하는 것들이다.

 

스스로가 만든 답답함의 감옥 속에서 허덕이다 문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나는 한 여성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고 생각했고 그 뚜렷함이 은밀하고 민망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해 숨기기 바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했다. 은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통해 한 번 더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깊이 숨겨져 있고 또 너무 오래 돼 알아채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바가 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을 몹시 원하는 사람은 어쩌면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가장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추구하는 명예가 무엇인지 가장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몹시 목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넘치는 열정에 전도를 하고 싶은 사람 또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은 그가 정말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목표는 베일에 감춰져 있고 그들은 단지 그 겉만 핥고 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자기 삶의 많은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의미를 기반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아니라 철저히 미지의 그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신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걸일까. 

 

이런 생각이 들더니 조금 자유로워졌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그 무엇일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거짓말은 답을 알고 있다고 여기는 나 또한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확실히 원한다고 하는 것 너머의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는 나를 앎과 동시에 당신도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상하지 않은 내가 고상한 척을 통해 진짜 고상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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