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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욥기 (2)] 엘리바스를 닮은 우리

20230803 청파교회 새벽설교

 

엘리바스를 닮은 우리

 

<욥기 6장 24-30절> 

 

24. 어디, 알아듣게 말 좀 해 보아라. 내가 귀기울여 듣겠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25. 바른 말은 힘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너희는 정말 무엇을 책망하는 것이냐? 

26. 너희는 남의 말 꼬투리나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말이란, 바람과 같을 뿐이 아니냐? 

27. 너희는,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 이익을 챙길 일이라면 친구라도 서슴지 않고 팔아 넘길 자들이다. 

28. 내 얼굴 좀 보아라. 내가 얼굴을 맞대고 거짓말이야 하겠느냐? 

29. 너희는 잘 생각해 보아라.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더 돌이켜라. 내 정직이 의심받지 않게 해야 한다. 

30. 내가 혀를 놀려서, 옳지 않은 말을 한 일이라도 있느냐? 내가 입을 벌려서, 분별없이 떠든 일이라도 있느냐?

 

 

욥의 응답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욥기 6장입니다. 욥기 6장과 7장은 욥의 세 친구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엘리바스가 한 말에 대한 욥의 응답입니다. 욥은 그의 친구였던 이 엘리바스가 한 말 때문에 상실에 고통외로움의 고통까지 더해졌습니다. 

 

4장에서 5장까지 이어지는 엘리바스의 긴 충고욥이 응답합니다. 사실 엘리바스의 충고라고 말하긴 했습니다만, 엘리바스가 한 것충고라기보다는 충고를 가장한 그저 날카로운 화살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대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소통입니다. 대화서로 나뉘어 살던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대화를 통해 서로가 더 멀어지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엘리바스가 욥에게 한 말들은 대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엘리바스의 말화살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화살에 맞은 욥은 말합니다. 내가 당한 고통을 당해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냐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 내가 겪은 고난을 저울에 달아볼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에게 감히 타인이 당한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계에 다다른 욥

 

그러고 나서, 욥은 친구들이 듣던 듣지 않던 자신의 속에서 솟아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고 화살을 쏘시니, 내 영혼이 그 독을 뺀다. 하나님이 나를 두렵게 하신다.”(4)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저 방관하고 계신 하나님 앞에 맺혔던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그는 한탄스러운 자신의 속마음을 이제는 가감 없이 주님 앞에 털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재 그의 심정을 가장 잘 묘사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욥은 말합니다. “누가 내 소망을 이루어 줄까?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깨뜨려 주시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 이렇게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오히려 내게 기쁨이 될 것이다.”(8-10a) 욥의 이 말은 다시 말해 무슨 말입니까? 죽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이 처절한 상실 앞에서 그리고 의인도 고통 받는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했습니다. 그는 체력과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11-13). 

 

욥의 한탄 

 

사실 누군가 하는 푸념이나 한탄, 때로 죽고 싶다는 말 뒤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의미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기를, 누가 나를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는 바로 친구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친구라는 존재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배신감을 안겨준 것입니다. 더 이상 아쉬울 것미련도 없는 욥이제 숨김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칩니다. “내가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든 말든, 내가 이러한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야말로,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라는 것들은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흐르는 개울처럼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구나.”(14-15) 지금 욥에게는 곁에 있어 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친구들이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필요한 대상욥을 배신한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더 높입니다. 어디, 내가 알아 듣게 말 좀 해 보라고! 내 잘못이 무엇인지 어서 말해 보라며,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6장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인데,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한 욥의 응답은 7장에도 이어집니다. 

 

엘리바스를 닮은 우리

 

오늘 이야기도 우리가 간직해 온 신앙지금까지 지내 온 우리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실 위로에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은 줄이고 귀를 여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습성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아는 사람잘 귀 기울일 줄 압니다. 욥의 좋은 친구였던 엘리바스도 처음부터 욥을 향해 입을 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욥의 세 친구처음 욥을 보았을 때, 그들은 슬픔을 못 이겨 그저 소리 내어 울면서 매우 고통스러워하였고 또 욥의 고통이 너무도 처참하여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욥2:13). 

 

그러나 엘리바스스스로 하나님의 마음의 전달자가 되려고 하였는데, 그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의로움에 취해서 고통받는 자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비단 엘리바스의 모습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욥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성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다시 점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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