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욥기 (4)]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

20230811 청파교회 새벽설교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

 

<욥기 12장 1-6절> 

 

1. 욥이 대답하였다. 

2 지혜로운 사람이라곤 너희밖에 없는 것 같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너희와 함께 사라질 것 같구나. 

3. 그러나 나도 너희만큼은 알고 있다. 내가 너희보다 못할 것이 없다. 너희가 한 말을 모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4. 한때는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적도 있지만, 지금 나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의롭고 흠 없는 내가 조롱을 받고 있다. 

5.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민다. 

6. 강도들은 제 집에서 안일하게 지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도 평안히 산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까지 자기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부재(不在)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욥기 12장입니다. 지난 11장에서는 욥의 세 친구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이었던 소발욥에게 한 발언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엘리바스, 빌닷과 마찬가지로 욥이 지은 죄, 욥의 잘못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한결같았습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운 주님께서는 결코 죄 없는 자를 벌하지 않으시고, 꾸짖지도 않는 분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은 합당해 보입니다. 

 

은 이미 가만히 있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입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던 욥은 친구들의 발언에 침묵으로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곤 너희밖에 없는 것 같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너희와 함께 사라질 것 같구나. 그러나 나도 너희만큼은 알고 있다. 내가 너희보다 못할 것이 없다. 너희가 한 말을 모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1-2) 욥은 친구들을 추켜세우는 듯 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말똑똑한 척 좀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의 정죄하고 판단하는 말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습니다. 

 

이어서 욥은 그들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고 자기중심적인지를 꼬집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한때는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적도 있지만, 지금 나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의롭고 흠 없는 내가 조롱을 받고 있다.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민다.”(4-5) 욥은 머리로만 아는 앎어떻게 진정한 앎이 될 수 있냐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친구들을 꾸짖습니다. 

 

사실 안다는 것곧 경험과 관련됩니다. 참된 앎자기 경험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특히 고통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누군가 내게 해줬던 말과 행동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대하는 태도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욥과 같은 일을 경험해 본 적없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욥과 비슷한 일을 경험했더라면, 고통 가운데 처한 사람더 구석으로 모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경험이 부족했던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자신들의 이성으로만 접근하였고, 그랬기에 그들은 개의치 않고 욥을 재단하고 함부로 정죄했습니다

 

그의 사정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사실 남들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우리는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타인의 고통 혹은 기쁨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같은 처지가 된다는 것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비를 맞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곁에 우산을 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비를 맞는 사람을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곧 결정을 내렸는데, 비를 맞는 사람함께 우산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참 따뜻하고 선한 행위입니다. 물론 요즘은 선행을 할 때무척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쨌든 삭막해진 시대를 살다보니, 이렇게 작고 따뜻한 행위점점 그리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비를 맞고 있을 때, 그와 함께 우산을 쓰는 것 말고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와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우산을 함께 쓰는 것정말 훌륭한 선행입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비를 맞는 행위그의 사정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행위는 비를 맞는 상대방과 같은 처지가 되는 것 혹은 동일한 입장이 되는 가장 직접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서울의 예수

 

여러분께서는 비를 함께 맞는다는 말속에 담긴 의미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와 같은 처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볼 수 없을뿐더러사람은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다른 일보다 가장 우선시 했던 일이 바로 누군가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쓴 옛 시가 생각났습니다. <서울의 예수>라는 시집에 담긴 시입니다. 그 시에는 서울에 계신 예수님이 등장하고, 현재 그분의 기분좀 우울한 상태입니다.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예수께서는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인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정호승,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95, 46-49) 

 

공감의 부재(不在)

 

욥의 고통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욥의 더 큰 고통은 아무래도 공감의 부재(不在)와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욥이 당한 고난의 무게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욥의 마음을 결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욥이 느낀 공감의 부재(不在)는 친구들이 경험한 경험의 부재(不在)와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욥의 처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미 힘겨운 일을 경험한 분도 계실 겁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우리의 의지 밖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사실 과거에 겪었던 고난상처의 경험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픔이라고 하는 것은 무척 잘 다루어야 하지만 그러나 상처나 아픔처럼 우리를 괴롭혔던 갖가지 어려움은 때때로 우리의 재산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욥기 12장은 우리에게 아픔의 경험누군가를 이해하는 좋은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배우고자 하면, 모든 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난 경험을 통해,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는 그런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