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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호흡이 멈추지 않도록

20130915 청파교회 1부 예배 설교

 

호흡이 멈추지 않도록

 

<역대상 4장 1-10절>

 

1. 유다의 아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다.

2. 소발의 아들 르아야는 야핫을 낳고, 야핫은 아후매와 라핫을 낳았는데, 이들이 소라 족이다.

3. 에담의 아들은 이스르엘과 이스마와 잇바스이며, 그들의 누이는 하술렐보니이다.

4. 그돌의 아버지 브누엘과 후사의 아버지 에셀은,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아들인데, 훌은 베들레헴의 아버지이다.

5. 드고아의 아버지 아스훌에게는 헬라와 나아라라는 두 아내가 있었다.

6. 아스훌과 나아라 사이에서는 아훗삼과 헤벨과 데므니와 하아하스다리가 태어났다. 이들이 나아라의 아들들이다.

7. 아스훌과 헬라 사이에서는 세렛과 이소할과 에드난, 세 아들이 태어났다.

8. 고스는 아눕과 소베바를 낳았으며, 하룸의 아들 아하헬 족을 낳았다.

9. 야베스는 그의 가족들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다.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내 영토를 넓혀 주시고, 주님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어 불행을 막아 주시고,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이루어 주셨다.

 

 

기도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

 

지난 설교 때도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저는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모태신앙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니를 따라 철야예배, 부흥회를 가노라면 큰 소리로 기도하는 어른들을 보곤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기도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처음에는 그 기도가 겁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통성기도, 방언기도소리에 맞춰 잠도 잘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중고등부 시절에는 방언을 받기 위해 열심히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한 시절들을 보내면서 ‘기도는 과연 무엇이고’, ‘기도는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알게 됐지만 기도에는 ‘침묵기도’, ‘관상기도’, ‘향심기도’, ‘소리기도’ 등 다양한 기도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에 관한 질문

 

혹시 여러분은 ‘기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란 과연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잘 모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고민을 했던 이의 ‘기도’는 그렇지 않은 이의 ‘기도’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야베스(Jabez)의 기도

 

중고등학교 시절, 흥얼거리며 부르던 복음성가가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장윤영이라는 CCM가수가 부른 ‘야베스의 기도’라는 곡이었습니다. 그 찬양이 특별히 좋은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가사와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가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인 역대(지)상 4장10절의 말씀입니다. 그때는 단순히 ‘복 받기를 바라는 한 성경인물의 기도인가 보다’라고 쉽게 넘겼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단순한 텍스트만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봉독 해주신 선생님께 더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름도 어렵고 아주 생소한 인물들의 족보를 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의 자손’에 대한 열거입니다. 주석가들은 이 부분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지역들에 대하여는 우리가 아는 것은 사실상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9-10절인 ‘야베스’에 관한 부분입니다. 

 

야베스에 대한 정보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대상 4장에만 등장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탄생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사실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산고(産苦)인지 다른 고통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탄생은 어머니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의 이름을 야베스(Jabez)라고 지었습니다. 히브리어로 ‘고통’을 뜻하는 ‘오체브(otzeb)’라는 단어가 그 이름의 어원입니다.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이 기도를 통해 세속적 성공을 거둔 사람인양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대기서가 기록된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의 기도를 그렇게 가볍게 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역대기서의 독자들은 바벨로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이웃들과 늘 대면해야 했습니다. 삶은 힘겨웠고, 미래는 어두웠습니다. 그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역대기서 저자에게 야베스라는 인물은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세속적 성공을 거둔 인물로 그려진 게 아니라 새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기 위해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과 열성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김기석, <삶이 메시지다>, 포이에마, p.221-222)

 

이러한 말씀의 배경을 알게 되니, ‘야베스의 기도’라는 찬양을 단순히 복 받기를 바라듯 가볍게 부를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기도는 무엇

 

요새 제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기도 생활에 열심을 다하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호흡에 비유하곤 합니다. 사람은 숨을 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찬은 기도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 없이도 너무 잘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며 기도를 호흡에 비유하는 이 비유를 바꿔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저를 향한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기도를 하려고 할 때,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기도의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려고 자리는 잡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의 모법 답안, 주님의 기도

 

성경에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있지만, 그에 비해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의 모범답안과도 같은 것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이라 부르는 ‘주님의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메시지(『Message』) 성경에 쓰여 있는 ‘주님의 기도’를 한번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소서. 세상을 바로잡아 주시고,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가장 선한 것을 행하소서. 든든한 세 끼 식사로 우리가 살아가게 하소서. 아버지께 용서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소서.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와, 마귀에게서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아버지께는 그럴 권한이 있습니다! 원하시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영광으로 빛나시는 아버지! 예, 정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6장7-13절)

 

‘주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막막할 때, ‘주님의 기도’를 반복해서 읽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바람(욕망)으로 가득 찬 기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구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저는 기도를 드리다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흡족한 기도인가?’, ‘지금 내가 드리는 이 기도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맞는가?’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온전히 분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들어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재밌는 예화 하나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스승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오두막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한 도둑이 그의 오두막에 들어갔습니다. 스승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둑이 가져갈 만한 것이라고는 담요 한 장밖에 없었고, 그는 마침 그것을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그 담요를 문 옆에 걸어두고 구석으로 가서 몸을 숨겼습니다. 도둑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어둠 때문에 그 담요를 볼 수 없었습니다. 도둑이 실망하여 방을 나가려는데 스승이 소리쳤습니다. 

 

“기다리시오. 담요를 가져가시오. 대단히 미안하게 됐소. 이 추운 밤에 그렇게 먼 길을 오셨는데 이 집에서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나에게 말해주시오. 그러면 내가 가난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준비하겠소. 이번에는 누추하지만 거절하지 말고 이 담요를 가져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이오.” 도둑은 이런 현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는 얼른 담요를 집어 들고 달아났습니다. 

 

그날 밤, 스승은 보름달이 뜬 창가에 앉아서 시 한편을 썼습니다. 그 시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달이구나! 저 달을 그 도둑에게 주면 좋으련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습니다. “그 불쌍한 사람은 그렇게도 먼 곳에서 왔는데!” 

 

(김기석, <삶이 메시지다>, 포이에마, p.215-21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하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좋은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눈앞에 있는 이익을 넘어 더 큰 정신을 소유할 수 있을지 고민과 과제로 남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축척물이 쌓여서 돌아온다.

 

여러분, 기도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넣으면 음료가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자판기처럼 기도하는 족족 응답이 돌아온다면 정말 여러분들의 믿음은 성장할 거라 보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기도했던 시간과 땀과 눈물이 축척되어 그 축척물이 쌓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진정한 기도의 응답을 받은 이의 삶은 기뻐서 환호를 지르는 삶이라기보다, 응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분함을 잃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내가 내 것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것, 저런 것 하느라고 서두르다가도 눈을 감고 엎드려 기도할 때 그 모습은 어느 때보든지 엄숙함을 줍니다. 우리 중고등부 개구쟁이 녀석들도 기도하자고 하면 실눈을 뜨던, 머리를 책상에 박고 있던 기도하는 행위에서는 엄숙함이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 이러한 엄숙한 순간들이 얼마나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기 위해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과 열성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우리는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 땅과 자신의 삶 속에 이루어내기 위해 믿음과 열성을 가진 기도의 사람입니까?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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