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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20150712 쓰임교회 주일설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마가복음 6장 1-5절>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4.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5. 예수께서는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북촌 어딘가에서

송정감리교회 가기 망설여지는 걸음

 

오늘 이렇게 쓰임교회 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제 고향은 강원도 동해입니다. 신학교 다니기 전까지 동해에서 살았습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산 것 같습니다.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한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그 교회 이름은 송정감리교회입니다. 동해역 옆에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교회입니다. 그곳은 교회학교 시절부터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제 삶의 기반을 이룬 곳이기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참 많이 웃고 많이 울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학교를 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향에 내려갈 일이 많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모교회인 송정교회를 가는 게 조금씩 어색하고 불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모교회가 싫어서도 아니고 특별히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철없던 어린 시절 저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과의 만남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남자는 평생 철드는 과정을 산다고 하지만 어렸을 적 제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저는 여전히 ‘그런 아이’, ‘그런 사람’, ‘철없었을 때의 000’으로 기억남아 있을 듯 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제 모습은 그 시절, 그 때의 기억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제 삶의 변화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변화는 더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향이란 포근함, 따스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이란 느낌이 가장 큰 장소이지만 반면 누군가를 생각할 때 고정된 옛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기억 응축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향에 들어선 예수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마가복음 6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데가볼리 도시 중 하나였던 거라사에 계시다 고향인 나사렛으로 옮겨 가십니다. 많은 지역에서 이적을 행하셨던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의 고향에서 멈칫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그들이 알던 종교의 권위자들과 비슷한 영향력을 주면서도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는 예수님을 보고 다들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근원과 지혜를 궁금해 했고 어떻게 기적을 일으키는지도 궁금해 했습니다(2).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 동네에 사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며 수근 대기 시작합니다. “야고보와 요셉, 유다와 시몬의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은 지금 우리와 이곳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가?(3)”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주 듣던 말씀이지요.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4).”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곳에서 몇몇 병자를 고쳐주신 일 외에 아무 기적도 행할 수 없었습니다(5).

 

어린 예수의 모습만 기억하는 고향 사람들

 

예수님을 포함한 예언자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향해 질책과 훈계의 말씀을 전하기에 항상 예언을 선포한 곳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접근했습니다. 왜 하필 고향이라는 특정한 장소의 이야기가 실렸을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서두에도 말씀 드렸듯이 고향은 장소적으로 특별한 곳이라 여겨집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옛 생각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만 기억하고 있던 나사렛 사람들은 어린 예수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기 시작한 그 때에도 고향 사람들에게는 예수는 그저 어린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예수님의 준비기간 즉, 성장과정이 고향 사람들의 기억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이 준비되었고 성숙해가고 변모해 가는 모습을 그들은 알 수 없었습니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이 평생 변해가는 과정의 삶이라면 어떤 과정을 지나고 있는 이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변화라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험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통해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거룩한 경험, 거룩한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특히 알아차리기 어려운 변화는 내면의 변화, 생각의 변화입니다. 물론 이것만큼 변하기 힘든 것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내면의 변화는 정말 더디게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 성찰의 과정을 통해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 경지에만 들어서도 참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는 하늘의 은총을 경험한 이의 변화입니다. 이 하늘의 은총은 하나님이라 칭할 수도 있고 어떤 거룩한 느낌과 경험, 깨달음이라고 이야기 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더라도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날 수도, 서서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없습니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변화하는 것과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평범했던 옛 모습에 사로잡혀 있던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당황스러우셨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낯설어 하셨고 불편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고향 사람들의 완고함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면 새싹이 돋는데 우리의 눈은 이것을 알아차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의 눈과 판단은 어떤 것을 넘어 보기가 참 힘듭니다.

 

여러분, 자신이 변하지 않아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을 통해 성숙해져 있을 수도 있고 또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참 변화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 잠잠히 도움을 구하십시오. 사랑이 가득한 그 분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그런 빛과 만난 사람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참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몇 달간 무더위가 시작됩니다. 무더운 여름 속에서도 인내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늘 하나님 앞에 잠잠히 도움을 구하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창고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입니다. 말씀을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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