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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요즘, 내 생각에 응원을 받다

보고 싶은 것이나 듣고 싶은 것이 있으면 혼자라도 찾아가는 요즘이다. 이름만 알던 강남순 교수님과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었고 한국에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나의 '사유의 틀'을 제공했던 인문학 강좌라 관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무료강좌라서 더 좋았다는 것은 안비밀이다. 강연 제목은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이었다. 

 

 

그렇게 당산역 근처 새물결 아카데미 북카페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들으러 갔었다. 

 

처음 가본 새물결 아카데미 북카페는 아담하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이었다. 그곳은 이미 4-50명에 가까운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놀란 것은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도 와 있었다는 사실 아무튼 그렇게 한번 뵙고 싶던 강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약간의 기록을 하며강연을 들었고 그 가운데 몇 가지의 기록들을 남겨볼까한다. 

 

 

교수님은 강의의 베테랑 답게 자신을 소개한 사회자의 이야기를 받아 자연스레 우리를 인문학 속으로 인도했다. 

 

교수님께서는 일관성있게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고정하려 하는 것과 제한하려하는 것, 절대적인 것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세 가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는 '비판적으로 사유하기'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인용하셨는데, 아렌트는 비판적 사유는 '나와 나 자신의 대화'이고 비판적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두 번째는 '이성적으로 사유하기'이다. 이성적으로 사유하기 위해 자신을 글과 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세 번째는 '물음 묻기 즉, 질문하기'이다. 그런데 질문에는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이 있는데 '좋은 질문'은 질문 받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내 안에 또 다른 세계를 찾게 만든다고 말씀하셨다. 그 대신 '나쁜 질문'은 '예 혹은 아니오'로 단정 짓게 만드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평생 질문만 할 것이 아니라 답을 내리는 것도 중요한데, 답을 내릴 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첫째 '모든 답은 잠정성을 갖는다과거에 내린 답은 현재에 내린 답과 다를 수 있다. 또 현재에 내린 답은 미래에 내린 답과 다를 수도 있다. 내가 변하는 한 답도 변하기 마련이다. 둘째 '모든 답은 부분성을 갖는다' 내가 아는 답, 내가 내린 답은 커다란 진리 중 극히 작은 것에 다름 아니다. 내가 아는 답은 극히 일부분인 것이다. 셋째 '모든 답은 특정한 정황 속에 매여있다' 답을 내리는 주체는 늘 어떠한 상황 속에 있다. 자신이 사는 시대, 국가, 지역, 성별 등 수많은 정황의 틀 속에서 답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으로 끄덕였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2시간 짜리 강좌였는데 교수님의 열띤 강연과 참여자들의 적극적 질문으로 3시간이 넘어버렸다. 

 

강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세 가지의 '인문학 정신'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첫 번째 '확실성을 내려놓고 불확실성에서 사유하라' 참가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던 거 같은데, 특별히 이 부분을 말씀하실 때 종교인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기독교만 보아도 불확실성은 갖는다는 건 신에 대한 불안한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믿음과 신앙의 틀을 보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저 인문학 정신으로 신앙생활도 가능한 거 같다. 물론, 끊임없는 불안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하는 수고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 '고정된 정답보다 새로운 질문 묻기를 배워라' 얼마 전, 문득 지하철을 타고 가다 들었던 내 생각과 같았다. 요즘 우리에게, 특히 목회자들이나 신앙인들에게 질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딱 떨어지는 답을 요구하는 질문 말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쉽게 내려지는 답이 아니어서 기도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 말이다.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왜'라고 묻는 다는 건 굉장히 불온한 사람으로 보긴 하지만 말이다. 

 

세 번째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물음표를 붙여라' 교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자명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상투성과 자명성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내가 그렇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꼬아보기 시작했다. '왜'라는 질문을 붙여보고 닫혀진 답에 의문부호를 붙여본다. 그래서 사사로운 갈등과 부딪침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마치 지금 내가 하는 고민과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응원을 받은 느낌이다. 지금 나의 이 인문학적 사유의 틀이 사람을 만날 때도 성서를 볼 때도 말씀을 준비할 때도 신을 생각할 때도, 세상을 읽고 세상의 흐름을 볼 때도 깊숙이 배어 있는 듯 하다. 

 

물론 자기 자신을 포함해 어떤 것도 '절대화' 되어서는 안되기에 인문학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긴 하다. 인문학적 사유의 틀이 자신을 변화 시키고 더 나아가 너와 나, 우리의 삶의 변화로까지 이어져갔으면 한다. 이것이 지금 나에게 주신 신의 기회이고 훈련이고 호흡이다.


 

이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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