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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17)] 주님이 계신 곳은 어디인가

20240118 청파교회 새벽설교

 

주님이 계신 곳은 어디인가

 

<시편 84편 1-4절>

 

1.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3.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4.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셀라)

 

 

이스라엘 삼대 순례절기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84편입니다. 시편 84편의 분위기는 기존의 시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금까지의 시편들은 시편의 저자가 고통 중에 주님의 도움을 구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의 시에서는 그러한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쁨의 노랫소리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의 구절들을 따라가 볼 텐데, 시의 구절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기쁨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기쁨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시인의 기쁨은 바로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무교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확의 철 열매를 드리는 절기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장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여 년 사는 동안, 지키고 보호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오늘의 시인은 소위 이스라엘의 삼대 순례절기 가운데에 한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러움의 대상

 

먼저 기쁨에 가득 찬 오늘의 시인은 부러운 마음을 한껏 드러냅니다. 시인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제단 곁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새들조차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1-4)

 

시인은 주님 곁에 거처를 마련한 새들조차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부러움의 대상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성전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 직무자들은 곧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일컫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성전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언약궤에 임하신 주님은 언약궤가 머무는 성전에 늘 머물렀습니다. 그렇기에 성전 직무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자연스레 주님 가까이에 머물게 됩니다. 시인은 그러한 성전 직무자들이 부러웠습니다. 주님과 가장 가까이 머물면서 주님을 찬양할 기회를 갖는 성전 직무자들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순례자들의 마음

 

이어서 5절부터는 예루살렘 순례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먼저 시인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4) 시인은 아직 본격적인 순례 여정을 떠나지 않았더라도, 머지않아 순례길에 오를 사람은 그 기대감 때문에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소풍을 하루 앞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인의 표현만 보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삼대 순례 절기는 헤어진 가족과 만나는 그 기쁨, 이상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순례길을 오른 사람은 그 길 위에서 만난 어려움 또한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쁨이 주는 힘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순례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여도 그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을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주님의 성소를 보기까지 갈증과 허기와 같은 육체의 한계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떠나는 이들은 이러한 수고를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7절에서 시인이 말했듯이,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간다는 그 말에서 순례자들의 마음가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 갈 공간

 

마지막으로 시인은 순례의 기쁨을 한번 더 이야기하는데, 그는 주님의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 하나님은 태양과 방패이시기에,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10-12)

 

시인은 단 하루를 살아도 주님의 전에서 사는 그 하루가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시인의 간절함과 마음가짐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악인의 장막에서 편히 지내는 것보다, 좀 더 수고로움이 있더라도 성전의 문지기로 지내는 것을 더 기쁘게 여겼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의 성전은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지친 우리의 영혼이 기쁨을 회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공간은 성전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순 없습니다. 주님의 성전이 그러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성소를 벗어나서

 

오늘 시편 84편은 다른 시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쁨의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인은 성전에 거하는 이들을 몹시 부러워합니다. 자신도 그들처럼 주님의 가까이에 머물면서 그분을 찬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마음이 아주 크고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인의 마음을 닮을 필요를 느끼면서도 또한 한편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몸이 늘 성소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소의 휘장을 가르셨습니다. 이는 성전 중심 체계가 무너진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세계 모든 곳으로 번져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전과 성전 밖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곁에 있는 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느 곳에서든 주님의 가르침을 행하려고 애쓸 때, 그럴 때,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거룩한 땅, 기쁨이 넘치는 성소가 될 것입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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