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6 청파교회 새벽설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에스겔서 15장 1-7절>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사람아, 포도나무 곧 삼림 가운데 있는 그 덩굴이, 다른 모든 나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느냐?
3. 거기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느냐? 그것으로 나무 못을 만들어서 무슨 물건을 거기에다 걸어 둘 수 있느냐?
4. 그것은 땔감으로 불 속에나 던져 버릴 것이다. 그 양쪽 끝은 타 없어졌고, 그 가운데 부분도 그을었는데, 그것이 물건을 만드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 그 포도나무가 온전할 때에도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었거늘, 하물며 그것이 불에 타고 그을었으니, 무슨 쓸모가 더 있겠느냐?
6.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를 내가 불 속에 땔감으로 던져 넣듯이, 예루살렘의 주민을 불 속에 던지겠다.
7. 내가 그들을 대적하겠다. 비록 그들이 불 속에서 피하여 나온다 해도, 불이 다시 그들을 삼킬 것이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그들이 크게 배신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 땅을 황무지가 되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포도나무의 유익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에스겔서 15장입니다. 에스겔서 15장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이어집니다.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유대 땅의 토양은 포도 재배에 아주 적합합니다(민 13:23-24). 그래서 포도는 거의 유대 땅 전역에서 재배됐습니다. 포도는 축복받은 식물이라 일컬어지는데, 밀과 보리, 무화과와 석류 그리고 올리브나무와 대추야자와 함께 축복의 7가지 식물에 속합니다(신명 8:7-10). 포도나무가 축복받은 식물인 이유는 포도나무가 신선한 과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포도주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의 소유는 곧 재산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열왕 21:1-16). 특히 포도는 날로 먹기도 했지만, 말려서 건포도나 건포도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는데(삼상 25:18), 건포도는 비타민과 미네랄, 철분이 풍성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양을 보충해 주는 아주 중요한 음식물이 되었습니다(삼상 25:18).
구약에서의 포도나무
이러한 포도나무는 성경의 여러 군데에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긍정적인 의미로 소개됩니다. 보통 포도나무는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는 풍요를 상징하는데, 이 풍요는 곧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합니다.
이 외에도 구약에서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포도에 비유하기도 했고,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끌고 나온 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포도나무는 포도라는 과일이 가진 소중한 영양소 때문에 축복과 풍요를 상징하는데, 이 축복과 풍요는 곧 이스라엘을 뜻하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는 이 포도나무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쓸모없는 포도나무
먼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른 모든 나무보다 이 포도나무가 더 나은 점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포도나무 곧 삼림 가운데 있는 그 덩굴이, 다른 모든 나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느냐? 거기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느냐? 그것으로 나무 못을 만들어서 무슨 물건을 거기에다 걸어 둘 수 있느냐?”(2-3) 주님은 이 포도나무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겠냐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혹시 나무 못이라도 만들어서 물건이라도 걸어놓을 수 있겠냐고 재차 물으십니다. 나무 못은 그야말로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미약한 도구인데, 이 표현은 곧 포도나무가 가진 긍정적인 면을 하나님께서 비꼬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동안 포도나무를 향해 이토록 큰 애정을 드러내셨는데, 이제는 포도나무의 쓸모없음에 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포도나무는 이미 불에 그을린 상태였습니다. 포도나무의 양쪽 끝이 다 타 없어졌고, 그 가운데 부분은 그을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 타버린 재목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여기서 한말씀 더 하시는데, 주님은 “그 포도나무가 온전할 때에도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었거늘, 하물며 그것이 불에 타고 그을었으니, 무슨 쓸모가 더 있겠느냐?”(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상태가 온전해도 쓸까말까 하였는데, 불에 타 그을리기까지 했으니 이 포도나무는 그야말로 사용가치가 전혀 남지 않은 무쓸모의 재목인 것입니다.
쓸모없는 존재
‘쓸모’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쓸모의 판단은 늘 조심하고 신중히 해야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쓸모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쓸모없는 삶이란 없다. 모든 영혼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공보경 옮김, 문학동네, 2013, p.56-57) 그는 우리는 누구나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조금은 추상적이긴 하나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과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다른 민족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웠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일찍이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과 유다 민족은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에(7) 누구보다 쓸모 있던 민족에서 누구보다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만 것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예루살렘 주민을 불 속에 던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적하겠다 말씀하십니다. 혹시 그들이 운이 좋아서 불에서 나오는 일이 있더라도 불이 그들을 다시 삼킬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7)
때늦은 후회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입니다. 심판받고 나서 깨달아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후회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사람은 떠나보내고 나서야 늘 후회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법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듯이 우리는 ‘지금’을 잘 누려야 합니다. 지금이 하나님과 관계 맺기 가장 좋은 때이고, 지금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매 순간이 기회입니다.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상황은 늘 유동적입니다. 지금 내 상황이 매우 분주한 상황일 수도 있고, 지금 내 상황이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일 수도 있고, 지금 내 상황이 몹시 지루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탓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포도나무를 불에 태우겠다는 말씀은 진짜 그것을 바라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이라도 나와 좋은 관계, 올바른 관계를 맺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절반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하나님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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