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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 Note / 예레미야서 (8)] 무의미한 일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11.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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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1 청파교회 새벽설교

 

무의미한 일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예레미야 32장 8절> 

 

8.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근위대 뜰 안으로 나를 찾아와서, 내게 부탁하였다. 베냐민 지방의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나더러 사라고 하였다. 그 밭을 소유할 권리도 나에게 있고, 그 밭을 유산으로 사들일 권리도 나에게 있으니, 그 밭을 사서 내 밭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그 때에 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명령임을 깨달았다.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서 32장입니다. 예레미야서 30-33장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한 하나님의 구원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회복과 희망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시드기야가 유다를 다스릴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바빌로니아의 왕이었던 느브갓네살 왕이 바빌론을 다스린 지 열여덟째 되던 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 왕이 바빌론을 다스린지 열 여덟째 되던 해는 곧 남유다가 바빌론으로부터 공격을 받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 남유다는 바빌론에게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현재 왕궁의 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왕궁의 뜰은 곧 감옥을 뜻합니다(37:21). 그런데 그는 바빌론에 의해서 감옥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시고 있던 왕인 시드기야의 명령에 따라 갇혀 있던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그에게 책망하듯 묻습니다. 당신은 ‘왜 예루살렘 도성이 바빌로니아의 손에 넘어갈’ 거라고 말하며 또 ‘내가 왜 바빌로니아로 끌려가서 그곳에 잡혀 있게 될 것’이라 말했는지를 따지듯 물었습니다(3-5). 그러니까 한마디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당신은 왜 이 나라가 멸망하게 될’ 거고 또 ‘왜 내가 죽을 때까지 바빌론에 머물게 될’ 거라 말했는지를 따지는 묻는 것입니다

 

회복을 예고하는 징표

 

그러자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그에게 들려줍니다. 어느 날, 예레미야의 숙부인 ‘살룸의 아들’이 그를 찾아와 자신의 밭을 사라고 합니다숙부의 아들 이름은 ‘하나멜’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밭은 베냐민 지방의 ‘아나돗’에 있었습니다. 하나멜은 갑자기 나타나더니 그 밭을 살 권한이 바로 당신 예레미야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일이 예고 없이 이뤄졌다면, 그는 당황했겠지만 이미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7). 

 

그래서 그는 그것이 곧 주님의 명령임을 깨닫고 아나돗의 밭을 은 17세겔을 주고 삽니다그리고 그는 하나멜에게 두 개의 계약서를 받는데, 하나는 ‘봉인된 매매계약서’였고 다른 하나는 ‘봉인되지 않은 계약서’였습니다. 당시 땅을 매매할 때는 파피루스양피지(가죽) 위에 두 개의 사본을 만드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파피루스양피지 상단에는 원본으로 활용할 계약서를 그리고 하단에는 사본으로 활용할 계약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단에 기록된 원본은 안으로 말아 끈으로 묶은 다음 도장을 찍고 봉인하였고, 하단에 기록된 사본은 바깥쪽으로 느슨하게 말아서 공적인 열람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예레미야도 이러한 전통 안에서 두 개의 계약서를 만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두 개의 계약서를 자신의 충실한 비서이자 친구였던 ‘바룩’(‘복 받은 자’라는 뜻)에게 전달하는데, 이것을 그에게 전하며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덧붙입니다주님은 봉인된 계약서봉인되지 않은 이 매매계약서를 옹기그릇에 담아서 여러 날을 보관하라고 명하십니다그것을 유다 사람들이 바빌론으로부터 풀려나서, 다시 고향 땅에서 살게 될 때 증표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어찌 보면, 현재로선 무의미해 보이는 이러한 일이 회복을 예고하시는 미래의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의문

 

하지만 예레미야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땅을 사고 매매 증서를 바룩에게 넘겨는 주었지만 과연 하나님이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유다를 회복시키실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묻습니다. 

 

먼저 그는 주님께서 그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이적과 베푸신 은혜를 찬양했습니다(17-22). 그의 고백을 먼저 듣겠습니다. (1) 주님은 권능이 크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크신 권능과 큰 팔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습니다. 주님은 무슨 일이든 못하는 일이 없는 분이십니다. (2) 그리고 주님은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지만 조상의 죄를 자손이 치르게 하는 분이십니다. (3) 그리고 주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계획하고 실천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분이십니다. (4) 그뿐 아니라 주님은 한 민족을 택하셔서 많은 징조와 이적을 보인 분이기도 하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셔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레미야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채 약속의 땅에서 주님께 큰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결과로 전쟁과 기근, 염병을 초래했고 결국 바빌로니아에게 점령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예레미야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14-15절에서 말씀하신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다시 이 나라를 되찾게 될 거라는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25). 

 

주님의 응답

 

주님은 예레미야의 질문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의 응답은 예레미야의 의심이 합당하다는 듯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먼저 주님은 26-3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남왕국 유다 사람들은 바알이나 몰렉이나 다른 신들에게 재물을 바쳤습니다(29,35). 우상숭배에 있어서는 누구도 열외가 없었습니다(1) 이스라엘 백성과 왕들, 고관들이나 제사장, 예언자 할 것 없이 모두 이 일에 동참했습니다(32). (2)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어떠한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33). 여기까지 보면 예레미야의 의심이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주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마음이 없어 보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을 이어서 하십니다. 주님은 먼저 3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똑똑히 들어라. 내가 분노와 노여움과 울화 때문에 그들을 여러 나라로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들을 이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이 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37) 주님은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머지않아 하나로 모아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39-4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받게 하겠다. 그 때에는 내가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고, 내가 그들에게서 영영 떠나지 않고, 그들을 잘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 속에 나를 경외하는 마음을 넣어 주어서, 그들이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게 하겠다.”(39-40)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고 다시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서두에 다루었던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게 했던 행위에 대해 다시 언급하시는데, 주님은 나중에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고 밭을 사서 매매계약서를 쓰는 행위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44). 이 말은 곧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이곳을 번성하게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주님은 예레미야가 밭을 샀던 상징적 행위를 이처럼 해석해 주셨습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의 의미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물었습니다. ‘왜 예루살렘 도성이 바빌로니아의 손에 넘어갈’ 것이며 또 ‘내가 왜 바빌로니아로 끌려가서 그곳에 잡혀 있게 될 것’이라 말했는지를 따지듯 물었었습니다(3-5). 그러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겪었던 일자신이 듣고 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가 왕에게 잘 전달됐는지 아니면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만 들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서 바빌로니아에게 지배를 당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어려움 뒤에 다시 희망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이 마치 예레미야가 ‘아나돗’에 있는 밭을 샀던 것처럼 어쩌면 의미 없어 보이는 한 행위를 통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의미 없어 보이는 하나의 행동이 나중에 어떠한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사람이나 자연에게 한 행동이 그러합니다. 사람은 앞의 일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작은 일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고자 하시거나 나에게 어떤 일을 보여주려는 표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말을 걸고 계시는지 모릅니다주님의 일하심을 제한하지 말고 모든 통로가 곧 주님이 내게 다가오는 통로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그런 하루임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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