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14 청파교회 새벽설교
성숙한 믿음으로 가는 길
<예레미야 27장 5-7절>
5. 내가 큰 권능과 편 팔로 이 땅을 만들고, 이 땅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도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의 눈에 드는 사람에게 이 땅을 맡기겠다.
6. 지금 나는 이 모든 나라를 나의 종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맡겼으며, 들짐승도 그에게 맡겨서, 그가 부리게 하였다.
7. 그러므로 모든 민족이 느부갓네살과 그의 아들과 그의 손자를 섬길 것이다. 물론 바빌로니아도 망하고 느부갓네살도 망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의 나라도 강한 족속들과 위대한 왕들을 섬길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과의 대립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 27장입니다. 예레미야 27장부터 29장까지는 하나의 묶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장의 본문은 모두 거짓 예언자들과 싸우라는 주님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거짓 예언자들은 바빌론이 곧 망할 것이므로 바빌론의 왕 느브갓네살에게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들의 말은 거짓 말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주님의 이 말씀을 남왕국 유다뿐만 아니라 이방 여러 나라에게도 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서두를 보면, 27장은 시드기야가 남왕국 유다의 왕이었을 때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남유다를 다스릴 무렵에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무 멍에를 만들어 밧줄을 달고, 그 멍에들을 네 목으로 메어다가 사절들에게”(2-3) 나눠주라고 말입니다. 먼저 여기서 ‘나무 멍에’는 짐승들에게 씌우는 도구를 말합니다. 그리고 주전 8-9세기 자료를 보면, 이 ‘멍에’는 포로를 이송할 때나 그들에게 노역을 시킬 때 주로 사용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멍에의 속성이나 전통 때문에 멍에란 말은 곧 속박이나 예속(왕상 12:4; 딤전 6:1) 그리고 정치적인 굴복(사 10:27; 렘 5:5) 또는 고역(신 28:48; 렘 28:13)이나 죄를 지는 것(애 1:14) 등에 관한 의미로 사용 됐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사절들에게 가서 지금부터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르라고 명한 것입니다.
사절들과의 만남
시드기야에게 온 사절들은 모두 다섯입니다. 다섯 사절단은 에돔과 모압과 암몬 그리고 두로와 시돈입니다. 그들은 시드기와 만나서 바빌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예레미야를 보내서 그들의 생각을 돌이키게 만듭니다. 먼저 주님은 “나의 눈에 드는 사람에게 이 땅을 맡기겠다.”(5)라고 말씀하시며, 그가 바로 비빌로니아의 왕 느브갓네살이라고 말씀하십니다(6). 그렇기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바빌론을 섬길 것을 명합니다.
만약 어느 민족이든 이 바빌론을 섬기지 않으면, 주님은 그 민족을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처벌해서 멸망당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8). 그래서 주님은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속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은 바로 예언자나 점쟁이, 해몽가나 박수, 마술사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이 떠벌이고 다니는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지 않게 될 거라’는 그 예언의 말을 듣지 말라고 명하십니다(9). 그대신 반대로 바빌로니아를 섬기는 민족에게는 그들의 고향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돕겠다고 말씀하십니다(11).
그럼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남왕국 유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과 그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겨서 살아 남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지 않는 백성은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은 그와 같이 죽으려고 하십니까?”(12-13) 주님은 남왕국 유다에게도 바빌로니아를 섬기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 또한 거짓 예언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성전의 기구들이 이제 곧 바빌로니아에서 되돌아올 것’(16)이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말은 거짓이라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22).
거짓 예언자는 누구인가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15절과 18절입니다. 주님은 거짓 예언자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먼저 15절입니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은 거짓으로 내 이름을 팔아 예언한다.”(15b) 그리고 18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언자들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그들이 주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라면”(18) 당시에는 주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이 주님이 보낸 예언자라고 칭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자는 두 부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1) 하나는 주님과 맞서는 예언자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거짓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분명한 입장을 전합니다. (2) 다른 하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과 맞서는 예언자입니다. 어쩌면 이들이 가장 큰 위험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거짓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23:18을 보면, “그 거짓 예언자들 가운데서 누가 나 주의 회의에 들어와서, 나를 보았느냐? 누가 나의 말을 들었느냐? 누가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들었느냐?”(23)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들은 주님께 전해받은 말씀이 없는데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이미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을 향해 14장에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 예언자들은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예언자로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명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이 백성에게 예언하는 것은, 거짓된 환상과 허황된 점괘와 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이다.”(14)라고 말입니다. 거짓 예언자는 자기 마음이 꾸며낸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들은 그저 의미 없는 말만을 외쳐댈 뿐입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이들은 이러한 말들에 현혹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전해줍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주님이 일하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이 늘 중심이 되기를 바라진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때로 이방 민족을 통하여도 일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처럼 바빌론을 중심에 두시고 일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민족이 되어버린 남왕국 유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바빌론과 맞서거나 바빌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궁리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잘 압니다. 남유다가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이미 남유다 사람들의 마음 속엔 주님이 있지 않았음을 말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 다른 한 가지 사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같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을 해방시켜주라 말씀하시는데, 그와 반대의 말을 전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가르고 나누는 데 익숙합니다. 예수의 가장 큰 대립자는 믿음 없는 이방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을 너무나도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날로 성숙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숙으로 가는 지름길은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믿음이 조금은 더 성숙해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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