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문학 140

낭비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 봄에 원래 이렇게 비가 많이 왔나 "간단히 말하자.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언어는 그 인간의 모국어다. 외국어는 컴퓨터 언어와 같다. 번역 과정을 거칠 때의 논리적 정확성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낭비를 용납하지 않는 그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지식과 의식의 깊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낭비에 해당하며, 그 낭비에 의해서만 지식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황현산, , 난다, 2024, p.144) 아주 오랜만에 에세이를 쓴다. 다른 글을 쓰느라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핑계이다. 아무튼 황현산 선생이 말한 이 글은 어려운 단어들이 곳곳에 침투해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지식에는 낭비가 필요하며 인간은 이 낭비로 발..

Salon 2025.05.16

나쁜 믿음

2025년 4월 18일 금요일 / 사람은 다 내 생각과 같지 않다 "원인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은 그에 대한 관측과 추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복잡성 이론을 내가 공부한 분야의 말로 이해한다면 나쁜 믿음에 빠지지 말자는 말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93)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일들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의 원인을 한 가지만 댈 수 없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이 표현에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됐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이 '복잡성 이론'을 따르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오류가 ..

Salon 2025.04.18

종이책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 고난주간에 더 한 고난들 "그러나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은 종이로 출판된 옥스퍼드 사전이다. 책과 잉크의 냄새가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고, 한 낱말을 찾다가 다른 낱말에 한눈을 팔 수도 있으며, 책의 수택에 연구자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전을 뒤적이다 피곤할 때는 그 두꺼운 사전을 베고 잠을 잘 수도 있다." (황현산, , 난다, 2024, p.83) '연세대 한국어 사전'의 편찬 위원이셨던 이상섭 교수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나 그분이 하신 이야기에 공감했고 재미를 느꼈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두꺼운 사전에 관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종이책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읽었다. 나는 전자책 읽기에 여러 번 실패했고 또 책을 좋아..

Salon 2025.04.17

객관화

2025년 4월 5일 토요일 / 어제 탄핵 선고를 들었다. 울컥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79)  이 생각에 동의한다. 인생이란 남의 일로만 여기던 것들이 나의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차차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 말이다. 김연수 소설가가 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맴돌았던 말이다. 그가 한 말의 전문은 이러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Salon 2025.04.05

성공

2025년 3월 27일 목요일 /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다른 장례가 쏟아지는 3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에 다시 입학하던 날, 그 학교 총장 명의의 서신을 받았다. 어떤 재능을 지닌 사람이건 자신이 지원하는 기예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을 연습에 몰두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었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자기 재능을 끌어내어 작품으로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이 시간은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한다고 쳐도 얼추 3년의 세월에 해당한다. 내 경우에도 비평가가 되기 위해, 갖가지 지식을 쌓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게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내고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만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딸이 그 편지를 정성 들여 읽기를 바랐다...

Salon 2025.03.27

제거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 따뜻한 봄날의 토요일 "흉악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형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기에 우리의 패배를 증명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흉악범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다." (황현산, , 난다, 2024, p.34-35) 1. 히어로물 영화도 좋아한다. 히어로물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들의 압도적인 힘의 매력 때문이다. 서사에 이끌려 가다 보면, 악당에 대한 분노가 쌓이게 되고 그럼 그 악당을 제거해 버리고 싶은 강한 욕구가 올라온다. 그때 선인이라고 여겨지는 히어로가 나타..

Salon 2025.03.22

어려운 개념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 봄 날씨와 미세먼지의 콜라보  "사후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들레르가 생각했을 한 점 티끌도 없이 완전히 찬란한 어떤 빛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죽음 뒤에 얻게 될 휴식처를 상상했고, 동반 자살한 연인들이 죽음 뒤에 이루게 될 완전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죽음 속에서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다.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볼 수는 없지만, 죽는 날까지 내내 시를 씀으로써 저 빛 속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삶을 이 땅의 우여곡절 안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황현산, , 난다, 2024, p.32)  누군가에는 쉬운 개념일지 몰라도 내게 어려운 개념이..

Salon 2025.03.21

공감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 시야를 넓게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인간은 공감하면서 우주와 함께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공감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과학을 만들어냈고 과학으로 우주를 측정하기 시작하자 무의식도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인간에게 우주는 측정과 분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공감과 참여의 공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인환, , 난다, 2020, p.236)  흥미로운 접근이다. 태초에 인간에게 무의식은 없었(을지 모르)는데, 그 무의식은 인간이 과학을 만들어내고 그 과학으로 우주를 측정하면서부터 출현했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트, 융, 라캉 등의 업적으로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이 보편화되..

Salon 2025.03.14

애도

2025년 3월 6일 목요일 / 갑작스러운 업무 토스로 살짝 멘붕 "사랑은 바르트에게 관계, 즉 '맺어져 있음'이다. 사랑의 상실은 그래서 이 맺어짐의 끊어짐이다. 맺어졌던 것이 끊어지고 나면 끊어진 자리가 남는다." (김진영)  (롤랑 바르트, ,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8, p.269)  웃긴다. 누군가의 장례를 정성스레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가족 장례의 참석자가 되어야 한다니. 인생 참 알 수 없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서울살이를 하며 10년 동안 함께 살던 할머니가 떠나가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하지 못했다. 산다는 게 다 서로를 속속들이 챙기지 못하며 산다는 건 줄 알면서도 후회가 남는다. 어른들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라고 말하지만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후회할 일을 만..

Salon 2025.03.06

인간의 사랑

2025년 3월 2일 일요일 / 내가 누군가에게 어른의 형상을 보였다니  "지독한 악취에 기절하려고 하는 애인에게 시인은 종부성사를 끝내고 무성한 풀꽃들 아래 백골들 사이에 누우면 우아한 그대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그친다면 이 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너무도 흔한 개념을 전달하는 교훈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마지막 연에 담아놓았다. 시인은 아름다운 애인에게 그대의 몸에 곰팡이가 슬고 구더기들이 키스를 퍼부을 때 그대의 품이 해체되더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나는 내 사랑의 형상과 거룩한 본질을 간직해두었노라고 그 구더기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김인환, , 난다, 2020, p.183)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Salon 202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