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Salon 205

꿈꾸는 사람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은 그때까지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 인물, 한 세계가 태어난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 이 인물들과 이 사상들과 이 세계들이 그냥 태어났겠는가. 그럴 리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 속 꿈꾸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우리가 아는 훌륭한 작가들은 생명을 가진 참 인간과 사상, 의미 있는 세계를 창조해서 이 세상에 내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오직 그것만이 그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실용주의자들 관점에서 꿈꾸는 사람들은 쓸데없어 보인다. 이 세상에,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을 실제의 사람들보다 더 가깝게 느낄 때가..

Salon 2024.10.08

문학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종교에는 관심이 없지만 문학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문학에는 흥미 없지만 종교에는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만약 문학과 종교, 종교와 문학이 서로 다른 게 아니라면? 두 가지 분야 다 인간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분야라면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한 분야를 깊이 판 사람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

Salon 2024.10.06

운명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모든 작가는 자발적으로 작가가 된다. 그런데 그의 그 자유로운 선택의 시간에 그가 작가 아닌 다른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꿈꾸는 일 말고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지 못한다면, 그가 다른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 자유와 운명이 한 단어라는 것은 그런 뜻이다." 자유롭지만 한 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바로 그러한 존재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단 하나의 선택만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자유인가 부자유인가. 그럴 때 출현하는 개념이 바로 운명이다. 자유롭게 선택했지만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게 어디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겠는가. 사람이 다 그러하다...

Salon 2024.10.05

우화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보르헤스는 어떤 대담에서 사유나 관념보다는 이미지나 우화에 더 끌린다고 말한 바 있는데, 우화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자생적이지 않고 더 본질적인 다른 이야기를 가리킨다." 관념과 사유투성이의 글. 허세가 담긴 글. 그래서 진솔함이 느껴지지 않는 글. 그게 나의 글이다. 나는 글 뒤에 숨는다. 삶도 있는 듯 없는 듯 산다. 글에도 삶이 묻어난다. 사유나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우화를 써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진실은 직선보다 곡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www.youtube.com

Salon 2024.10.05

인생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내버려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날아 들어온 꽃잎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런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시)  책장에 꽂혀 있던 책. 오래전, 중고 서점에서 샀던 책.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펼치게 된 책. 릴케의 시는 언제 읽어도 잔잔한 감명과 깊은 깨달음을 준다. 시. 첫 문장에 이미 마음 문이 열렸다. 인생이란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 그저 아이의 형상을 회복하면 되..

Salon 2024.10.04

의무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나는 나의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려는 것을 실현하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소설)  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그것도 성인이 되어서 말이다. 이 문장에 사로잡혔었고 위로와 억울함이 함께 몰려왔다. 더 늦기 전에 나다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이 문장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와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전에 이 문장을 만났을 때는 나의 용기 없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빠뜨린 부분이 있었는데, 헤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책에 기록해 두었다는 점이다. 그는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려는 것을 실현하는 게 '의무'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 내가 살고 싶은 ..

Salon 2024.10.02

비참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인간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진정 위대하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설)  아포리즘은 어렵다. 상징적이고 함축적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모순이다. 비참과 위대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은 용감하다. 하나만 아는 사람도 용감하다. 그러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때문이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음도 알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작가야의 말씀살롱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www.youtube.com

Salon 2024.10.02

내부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밖(에 있는 것)을 보려면 당연히 눈을 떠야 하고, 안(에 있는 것)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한다. (...) 그러나 사람의 내부라는 공간은 없다. 사람의 내부는, 외부와 같은 식으로, 그러니까 하나의 장소로 있지 않다. 내부는 '어디'(공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놈'이 나의 내부다." (에세이)  밖을 보려면 눈을 떠야 한다. 그런데 안을 보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모두 보기 위함인데 눈을 떠야 할 때와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의 내부에는 공간이 없다. 그렇기에 장소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다. 당연히 눈을 떠도 보지 못한다. 이승우 작가는 내부는 공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Salon 2024.10.02

도피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의 동기가 도피인 경우가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내부를 피해 외부로 달아난 어떤 사람은 외부에서, 그러니까 세상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산다. 그는 내부의 '나'를 만나기가 두려워서 외부에서만 산다. 외부에서 타인과 일과 열심히 산다. 누구보다 바쁘게 최선을 다해서 산다. (...) '자기 착취'가 그렇게 이루어진다." (에세이)  일에 몰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러고 싶었던 것일까. 일의 시작과 과정, 결과에 '나'가 있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경우다. 일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그..

Salon 2024.10.02

다른 반응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이따금 머릿속에 생각과 표현이 가득 차거나 격한 감정이 몰아치면 이런 순간을 한물간 표현으로 '영감'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 충만감이 커다란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영감이 나를 완전히 지치게 하거나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혹은 공허감을 남겨 줄 때가 문제다. 그 상태에 이르면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가득 차거나 몰아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살면서 가끔 경험하는 충만감이다. 반대의 일도 일어난다. 가득 차거나 몰아치지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치고 마음이 가라앉고 공허해진다. 살면서 가끔 경험하는 결핍감이다. 같은 감정이 같은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니 신기하면서도 답답할 노릇이다. 사람이 그러하다.   이작가..

Salon 2024.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