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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재발행)

"죽음은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큰 질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오는 깨달음은 질문의 형식으로 온다. 죽음은, 유일한 질문이다. 삶의 모든 경험이 바쳐져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질문이다." (이승우, )  죽음은 종착지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가 얻게 될 마지막 대답인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죽음이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라면? 죽음 가까이 간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답이 있어야 하는 하나의 질문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혼란스럽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삶의 경험은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또 삶의 모든 경험이 바쳐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결과물이 죽음이라면 삶을 지속해야 했던 당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래서 사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질문은 답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답..

Salon 2024.11.20

죽음(재발행)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이승우, ) 주위에 게으르면서도 즉흥적인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과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약속했는데 도저히 나타나질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포기한다. 그런데 포기한 그 순간, 아주 갑작스레 그 친구가 나타난다. 이렇게 게으르고 즉흥적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친구는 결코 약속을 파기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또한 이중인격자다. 게으르지만 성실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렇다. 죽음은 온다. 누..

Salon 2024.11.19

불가능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그러나 자신에게 도착하는 일은 아마 마지막까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도달하기 위한, 그러니까 하나의 세계인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 마지막까지 이어질 뿐이다, 라고 나는 『데미안」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몸부림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도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잠에서 깨지 않는 삶을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승우, )  어디선가 읽었다.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민주화가 되려는 시도 속에 담긴 것이지 도달할 산꼭대기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평생에 거쳐서 ..

Salon 2024.11.18

싱클레어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고비마다 에밀 싱클레어를 찾아왔던 이들,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이 다 데미안이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이들, 여럿의 데미안이 모두 내 안에 있는 존재들이라고, 나와 '다른' 나로 내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승우, )  소설 속, 싱클레어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 가운데 일부는 그가 인생의 고비를 넘어서게 돕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데미안을 이렇게 표현한 지점이다. 헤세는 데미안의 얼굴을 소년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여성이기도 하고 노인이기도 한, 천년을 산 사람 같기도 한, 유령 같기도 한 '존재'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데미안은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존재, ..

Salon 2024.11.17

주인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비범함에 유혹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비범한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외부의 자극에 대한 모방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길을 찾는 탐구여야 한다. 인간의 본성, 즉 알 속에 안주하려는 나태를 뒤집어야 한다. 비범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비범함이 필요하다." (이승우, )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삶의 모토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다. 니체는 악을 이기는 힘이 더 큰 악이라고 말했다. 이 말 때문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니체의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 이승우 작가는 사람은 악에 끌리는 게 아니라 악이 가진 비범함에 끌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이 비범함이 주는 유혹을 피하기 쉽지 않은데 비범함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비범한 ..

Salon 2024.11.16

비범함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 "그들은 그 나무의 열매가 금지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뱀이 다가와 유혹할 때까지 유혹되지 않았다.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욕망을 더 자극하지 않았다. 그들을 넘어뜨린 것은 금지한 신의 말이 아니라 뱀이 한 어떤 유혹의 말이었다. 뱀은 그들에게 이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되고, 신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 때문에 신이 먹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해서 인간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승우, )  금지된 것이 사람을 욕망하게 한다는 말은 심리학에서 일반화된 말이다. 경험을 통해서도 아는바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승우 작가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금지 자체가 사람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무엇이 사..

Salon 2024.11.15

나이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인간은 악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비범함에 이끌린다. 악을 행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악의 어떤 속성인 비범함을 소유하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내세우기를, 그렇게 보이기를 원한다. 모든 유혹의 핵심에 이 욕망이 깃들어 있거니와 특히 이런 유혹에 취약한 시기가 있다. 에밀 싱클레어의 시간이다." (이승우, )  이 문장에 의하면 '인간은 악에 이끌린다'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인간은 악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악이 담고 있는 비범함에 끌리기 때문이다. 악은 낯설다. 그래서 인간은 악을 불편해하면서도 그것에 이끌린다. 나이가 들면 유혹의 종류도 바뀐다. 유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의 유혹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유혹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유..

Salon 2024.11.14

두 세계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헤르만 헤세는 두 세계를 대비시킨다. 에밀 싱클레어와 프란츠 크로머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한쪽에 모범과 교육, 광채와 투명함과 청결함의 세계가 있고 다른 쪽에 거칠고 무시무시하고 무질서한 세계가 있다. 두 세계는 서로 너무나 다르다. 문제는 이 구별된 두 세계가 맞닿아 있다는 데 있다. 맞닿아 있는데 금지되어 있다는 데 있다. 금지되어 있는데 유혹적이라는 데 있다." (이승우, )  이 좋은 책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빛과 어둠의 대조다. 빛과 어둠은 두 세계가 확실하다. 선과 악이 하나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은 구별하기 위한 구분이지 인간이라는 한 존재 안에서의 구분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우리 안에는 밝음과 어둠이 늘 공존하..

Salon 2024.11.14

유혹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 유혹이 있다. 에밀 싱클레어를 유혹한 것은 프란츠 크로머의 불량함, 악이다. 아니다. 모든 유혹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발동한다. 모든 욕망은 매개된 것이라는 르네 지라르를 따라 이해하자면, 프란츠 크로머는 다만 매개자일 뿐이다. 그는 에밀 싱클레어가 무엇인가를 욕망하도록 자극한다. 프란츠 크로머가 나타나기 전에는 없었던, 자기 안에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욕망이 에밀 싱클레어에게 나타난다. 비범함에 대한 유혹이 그것이다." (이승우, )  안토니오 수도사는 라는 책에서 유혹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유혹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유혹을 당해 보지 않고..

Salon 2024.11.14

소설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실제로 나는 크로머 같은 사람을 만났고, 데미안 같은 사람도 만났다. 크로머 같은 이를 만난 곳은 밤, 골목이었고, 데미안 같은 이를 만난 곳은 낮, 교회였다." (이승우, ) 소설 속 인물이 소설 속 인물일 수만 없는 이유는 글을 쓴 작가는 그런 사람을 만났고 그런 사람에 대한 기억을 책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작가가 만난 인물이 꼭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명을 만났지만 그 한 명은 하나의 대명사처럼 여럿일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소설 속 인물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자기 인생에서 만나기도 한다. 나도 을 읽으며 내가 만난 크로머는 누구인지 또 데미안은 누구였는지를 생각해 봤다. 물론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간이나 공간일 수도 있..

Salon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