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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락

2025년 2월 25일 화요일 /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했던 오전  "아셴바흐는 향락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고 마음껏 놀거나, 느긋하게 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 특히 젊은 시절에 그랬는데 - 불안감과 거부감 때문에 곧 다시 아주 힘든 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엄숙하게 마주해야 하는 일상의 소임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토마스 만, , 박동자 옮김, 민음사, 2023, p.74)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주어져도 잘 놀지 못한다. 잘 노는 사람들이 볼 때, 이들은 바보, 멍청이다. 내가 그렇다. 향락을 좋아해 봐야 얼마나 대단한 향락이겠냐마는 향락의 언저리에 갈 기회가 생겨도 정신을 부여잡고 나를 놓지 못한다. 혹은 그런 향락의 언저리에 갔다고 생각되는 날의 다음 날..

Salon 2025.02.25

표현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 주일 아침은 늘 그렇듯 긴장 "나는 군사독제 시절의 습관에다 인간의 심장은 조금 왼쪽에 있다는 생각에서 민주화 이후에도 선거마다 중도 좌파라고 보이는 정당을 선택했지만 어느 쪽이 여가 되건 내가 얻은 것은 쓸한 실망감뿐이었다." (김인환, , 난다, 2020, p.140) 정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문장에서 좋은 표현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좋은 표현이 지닌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잘 고른 표현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낮추는 윤활제가 된다. 김인환 선생은 자신을 중도 좌파로 명명했다. 그런데 이 중도 좌파의 근거를 인간의 몸에서 찾았는데, 그 근거는 '인간의 심장이 조금 왼쪽에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왔다. 나는 이래, 나는 저래, 나는 이게 중요해, ..

Salon 2025.02.23

영감의 원천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 괜히 마음이 어수선한  "세상 사람들이 작품의 원천이나 집필 배경을 모른 채, 단지 아름다운 작품만을 접한다는 것은 확실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주 혼란에 빠지거나 깜짝 놀라서 훌륭한 작품의 효과를 없애 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 , 박동자 옮김, 민음사, 2023, p.82)  예술가와 작품을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이 둘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생명은 부모에게서 왔다. 그런데 예술가 개인의 삶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그의 작품이 욕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어쩌면 예술가의 위대한 작품이 누군가 불만족한 그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 때..

Salon 2025.02.22

사랑

2025년 2월 21일 금요일 / 감기약이 좀 받는 듯한 날  "(...)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이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 는 신이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 , 박동자 옮김, 민음사, 2023, p.80-81) 사랑에 대한 논쟁은 늘 뜨겁다. 지나간 사랑을 두고 봤을 때, 사랑은 '더' 사랑했던 사람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는가, 그보다 '덜' 사랑했던 사람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는가. 답은 정해져 있다. 전자일 테다. 그러나 이별을 경험한 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이 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시점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려나. 그것도 미지수다. 정희진 작가는 "모든 예..

Salon 2025.02.21

단순한 진리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 지긋지긋한 콧물과 목감기  "아니제. 하늘 사람인 아해들은 이미 큰 인물이제. 자기 안의 하늘을 보고 서로 안의 하늘을 보고, 각자가 가진 은사를 써서 도우며 사는 게 홍익인간이제. 그라믄 세상도 좋아지는 것이제." (박노해, , 느린걸음, 2024, p.51) 평범한 이 문장이 왜 가슴에 와닿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문장이 (잠시) 욕심을 내려놓게 했기 때문이다. 큰 인물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동네 어르신은 이미 아이들은 큰 인물이라며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혼잣말로 일침을 놓는다. 어르신의 이야기는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원래부터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여 잘 다듬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리고 자신을 잘 다듬는다는 ..

Salon 2025.02.20

[청파 Note / 에스겔서 (8)] 성전인가? 신당인가?

20250220 청파교회 새벽설교 성전인가? 신당인가?   1. 우리가 포로로 잡혀온 지 이십오 년째가 되는 해, 예루살렘 도성이 함락된 지 십사 년째가 되는 해의 첫째 달, 그 달 십일 바로 그 날에,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아, 나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가셨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단락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에스겔서 40장입니다. 에스겔서 40장부터 마지막 48장까지는 또 하나의 묶음으로 묶일 수 있습니다. 33-39장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래에 받게 될 새로운 희망과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40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에스겔이 본 환상을 통해서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

Note 2025.02.20

뼈, 살, 피부

2025년 2월 19일 수요일 / 떨어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골치 "제아미는 연기에도 사람처럼 피부와 살과 뼈가 있다고 하였다. 뼈는 타고난 재능이고 살은 훈련으로 형성된 재능이고 피부는 개인의 특성이다. " (김인환, , 난다, 2020, p.120)  사람은 살면서 세 가지를 경험한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 훈련으로 형성된 재능, 개인의 특성. 이 세 가지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순 없지만 사람의 살아갈 방향성을 제시할 순 있다. 이 세 가지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내가 타고난 재능은 무엇인가? 갈고 닦아서 훨씬 나아진 재능은 무엇인가? 타고난 재능과 갈고닦은 재능은 같은 재능을 말하는가? 마지막으로 비슷한 재능이 만났을 때, 나만이..

Salon 2025.02.19

시절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 목덜미가 뻐근한 아침  "아기도 아니고 소년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고아도 아니고, 보호의 품은 깨어졌으나 홀로 걸어갈 내 안의 무언가는 깨어나지 못한 나이(일곱 살). 문득문득 한낮의 어둠이 찾아오고 한밤의 몽유가 걸어오고, 자주 세상의 소리가 끊어졌고 이 지상에 나 혼자인 듯 아득해지곤 했다." (박노해, , 느린걸음, 2024, p.45)  소설가 김연수는 청춘을 일러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당시 이 문장에 왜 그렇게 공감이 됐을까. 내가 그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오늘 박노해 선생의 책을 읽다가 그보다 더 어린 시..

Salon 2025.02.18

고독한 사람

2025년 2월 16일 일요일 /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글쓰는 중  "고독하고 말없는 사람이 관찰한 사건들은 사교적인 사람의 그것보다 더 모호한 듯하면서 동시에 한층 집요한 데가 있다. 그런 사람의 생각들은 더 무겁고 더 묘하면서 항상 일말의 슬픔을 지니고 있다. 한번의 눈길이나 웃음, 대화로 쉽게 넘어 갈 수 있는 광경이나 지각들조차 지나치게 신경쓰게 하고, 끝내 그의 침묵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서는 중요한 체험과 모험과 감정들로 남는다. 고독은 본질적인 것, 과감하고 낯선 아름다움, 그리고 시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고독은 또한 역설 불균형, 그리고 부조리하고 금지된 것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 도중에 보았던 현상들, 그러니까 애인에 관해서 헛소리를 해 대던 볼썽사나운 멋쟁이 늙은이와, 뱃..

Salon 2025.02.16

인내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 평온한 듯 분주한 아침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8, p.35)  나는 성격이 급하다.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나에게서 여유를 발..

Salon 20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