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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무엇에 끌리던 시작하라

​사랑의 동기 중 덧없는 것을 다 뺐을 때, 무엇이 남았을까?
육체와 지성과 가진 것들을 제하니, 어떤 사랑할 이유가 남았을까?
그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은 늘 미지의 무엇이자 영원한 희구였다.

누군가를 향해 사랑할만하다 말할 때, 대체 그 ‘사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누군가의 재산이나 연봉, 똑똑함이나 유쾌함, 탄력 있는 몸매나 큰 키에 끌린다고 하면 혹자들에게 아직 사랑을 모른다, 라는 말을 듣거나 혹은 사람 볼 줄 모른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곤 덧붙여말하길 정말 중요한 건 사람의 성격이라고 말한다.

성격은 마법과 같다. 이는 사람을 달리 보이게 만들어 겉으로 특별히 끌어당길만한 것이 없던 사람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격이 맞는 사람은 그 관계의 지속성에 있어 미치는 영향력이 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되길 원한다. 혹은 상대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기도 한다. 돈이나 지성, 몸매 때문에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사랑은 우리 안에 어떤 의심의 공간을 만든다. 만약 ‘이러저러’한 것들이 없어진다면 나를 향한 상대의 사랑이 식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만약 현재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상대의 어떤 점에 끌려 또 무엇이 좋아 사랑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답할 수 있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상대에게 끌리는 것이 그/그녀가 가진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면, 사람을 제대로 만났다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란 평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볼 것이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요소인 그 성격은 상대가 가진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이 맞는가? 사실 사랑을 해봤다면 알겠지만, 한 사람 안에 다양한 결들의 성격이 있음을 알 수 있기에 상대의 성격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물론 대표적인 성격을 고를 순 있다. 그렇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정의할 수 있는 상대의 성격은 고작 그 다양한 성격들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드러나는 그 한 가지만이 아니던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 연인이 나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신이 연인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격을 포함해 우리가 상대를 보며 판단할 수 있는 것 즉, 돈, 지성, 몸매 등의 것 너머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인식(무의식도 포함)의 차원에 붙들린 것들만을 가지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연인을 향해, 나에게 있는 것 중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여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혹 자신의 성격이라 할지라도 결국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에 지속적인 사랑에 있어서는 덧없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사랑은 감각의 차원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신(神)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랑을 그만 두어야 하나? 아니면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하나?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랑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 한계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면 된다. 모든 사랑은 유한하다. 그래서 사랑은 유한하기에 그 유한함을 반복함으로 무한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대의 좋은 점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금, 현재 사랑할만한 것을 선택하여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에 끌리든, 영원하지 않을 것에 끌리는듯해도 염려 말고 일단 시작하라.

 

 

이작가야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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