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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이방인이 될 용기

 

 

케이가 고백을 한다. 

 

"좋아합니다. 

제가 당신을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

 

그리고 더듬거리며 

용기를 내 사귀자고 말한다. 

 

수화기 너머 

크림의 답이 들려온다. 

 

"아직,

누굴 만날 생각이 없어요."

 

케이는 거절을 당했다. 

돌아선 그는 목석처럼 굳어버린 듯하다. 

 

더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물러서야 할까.

 

애매한 거절에 

애매한 상황이 펼쳐졌다. 

 


 

솔직함! 

 

그게 뭐지?

 

솔직함은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나쁘다면 왜 나쁜 거지? 

 

예의를 갖춘 '적절한' 거절이나 호응은 

훌륭한 인간관계의 처세술이 맞나? 

 


 

 

케이는 우연히 길을 걷다

카뮈의 책 <이방인>을 줍는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과

지하철에서 무심히 읽다 보니 

'뭐 이런 인물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해하다.

난해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 <이방인>

 


 

 

우연이 곧 표지임을 안 케이는

그 책을 곱씹어 보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뫼르소!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났지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연히, 

아주 우연히 사람을 죽이고 만다. 

 

그리고 법정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무미건조하게 진술한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어떤 표류물 같은 존재로 여김 받는다. 

 


 

 

 

케이는 이  책이 혼란스럽다. 

 

카뮈는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듯 하지만  

그 답을 내리기가 녹녹지 않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반드시 슬퍼해야 하나?' 

'슬퍼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슬퍼해야 하나?'

 

또는 

 

'우리는 항상 친절해야 하나?' 

'친절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뭘까?'

 

재판장에서 뫼르소는 

재판장에게 얻은 발언권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판장이 잔기침을 하고 나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덧붙여 할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으므로 

일어서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랍인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그건 하나의 의사표시라고 대답하고, 

지금까지 자기는 나의 변호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변호사의 말을 듣기 전에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빨리 좀 뒤죽박죽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민음사, p.115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태양? 

태양이 살인을 조장했단 말인가? 

태양. 

태양이 뭐라고. 

 


 

 

1954년, 한 인터뷰에서 카뮈는 이런 말을 한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합니다.” 

 

 

태양은 

돌, 바람, 바다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듯,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행동해도 괜찮다고 알려준 

표현의 원천이었던 걸까? 

 


 

케이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카뮈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이 책에 관해 이런 설명을 한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게, 관능적으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를 일종의 표류물과도 같이 

간주하고 싶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 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깊은 정열이 

그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소극적인 참으로 존재한다는 진실, 

느낀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민음사, p.141-142

 


 

 

 

'있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것',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 것',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 것'.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한다는 건 

삶을 간단하게 하지 않는다. 

 

사회는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불온한 자가 된다. 

 


 

케이는 카뮈가 건네는 말을 

삶에 적용해 보기로 한다. 

 

우연히 주운 책을 

신의 표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솔직한 삶은 힘든 삶이다. 

귀찮은 삶이고 골치 아픈 삶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삶이다. 

 

매 순간 솔직할 순 없겠지만, 

솔직하지 못해 우리가 자꾸 소멸된다면, 

나 자신을 자꾸 잃게 된다면 

한 번 솔직함을 선택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케이는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보기로 한다. 

 

잠자리에 누워

이것을 선택했을 때 

무엇이 좋을지 상상해 본다. 

 

그의 심연이

좋은 것이 있을 거라 말을 건넨다.

 

'그게 뭔데요?' 

 

심연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쌓이지 않을 것이다. 

찌꺼기, 잔여물이 남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사랑의 관점에서 이를 적용해 본다면,

연인들 간의 솔직한 대화는 

고통을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나 

새로운 생명이 등장할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솔직함은 용기를 수반한다. 

 

사랑도 솔직하게 요구하고 

표현해야 한다. 

해봐야 한다. 

 

거절당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잔여의 무엇이 남지 않을 것이다. 

 


 

케이는 크림을 생각한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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