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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에세이] 모기에 담긴 추억 가을이 오면 모기가 극성이다. 알람도 한 번에 깨우지 못한 이 무거운 몸뚱이를 모기는 단번에 일으킨다. 귓가에 왕왕대는, 평생 익숙해질 수 없는 그 기묘한 날개소리의 힘은 가히 대단하다. 대체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나, 모기의 유입경로를 찾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 길어지면, 집안을 완전히 밀폐시키고 에프킬라를 잔뜩 뿌려놓은 뒤 산책을 나갔다와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모기 포획방법은 어렸을 때 엄마, 누나와 함께 늦여름 저녁마다 하나의 의례처럼 행했던 방법이었던 게 생각이 났다. 모기가 추억 하나를 불러온 것이다. 단잠을 자기 위해 집안을 에프킬라로 가득 채운 뒤 산책을 나갔다 왔던 그 시간들을 가을 모기가 물고 온 것이다. 살다 보면 잊혔던 옛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잊은 줄.. 더보기
[에세이] 낯선 이와 함께 가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특정한 경험 속으로 들어가면, 평온한 일상에서의 자신이 아닌, 특별하고 낯선 이가 출현한다. 아니다. 기억이 난다. 이전에 만났던 익숙한 이가, 잠들어 있던 이가 스멀스멀 출현한 것임을. 잠시 외면했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바뀐 것은 없지만, 여전한 그이지만, 돌아온 걸 환영하고,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신을 내려놓고, 이전의 네가 아닌 솔직하고 예의 없는 모습으로 가거라. 이작가야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사랑 💜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기억의 저장소.. 더보기
[에세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목도의 감정 선생님 책장에 꽂혀 있던, 이미 오래전 선생님이 읽으셨던 카뮈의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손때가 뭍은 책이기에 선생님이 줄 치신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랬다. 사시는 모습처럼 그는 그랬다. 평소 선생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처럼 끈기, 의지, 초인, 책무 등에 밑줄을 그어 놓으셨다. 삶의 방식을 재확인하고, 책이 건네는 말에 다시 한번 삶의 방.. 더보기
[에세이] 사색하고 기다리고 단식하는 이 헤르만 헤세의 소설 에는 재밌는 구절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싯다르타와 카말라가 나누는 대화이다. 카말라는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옷, 신발,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싯다르타에게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찾게 되면 그때가 돼서야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야 그 세 가지를 가장 신속하게 얻을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러자 카말라는 말한다. "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싶어하지요. 당신이 배운 일을 하셔야지요. 그리고 그 대가로 돈과 신발과 옷을 얻도록 해야지요. 가난한 사람이 돈을 손에 쥐는 데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도대체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지요?" (헤르만 헤세, , 민음사, p.8.. 더보기
[에세이] 감정이 가진 힘 어떠한 감정이든 지나가기 마련이고, 어떠한 감정이든 되살아나기 마련입니다. 사람에게 감정의 지분은 꽤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감정은 참 힘이 세더군요. 그래서 가끔, 삶이 무료할 땐 그 힘에 기대 보기도 하는 거고요. 사강(sagan)이 그녀의 소설 에서 한 말에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잘 나눠 가진 것은 상식이 아니라 감정이다.”라는 그 말에요.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더보기
[에세이] 시간의 회귀 찬바람이 분다. 아직까진 시원한 바람이다. 계절은 빈틈없이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왔다. 그래서일까. 시간의 회귀는 막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것이리라. 그가 그녀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하자,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짦음에 대해 말했었다. "일 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베르나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시간의 지속성을, 고독의 완전한 중지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과 같았다. 프랑수아즈 사강, , 소담출판사, p.136 시간이 내게로 왔다. 이제 시간을 맞이하러 가야 할 때이다. 이작가야의 BibleSalon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 더보기
[에세이] 상냥할 수 있다는 특권 책을 읽다가 생각지 못한 단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녀는 엄청난 무력감의, 엄청난 상냥함의 포로였다.” (프랑수아즈 사강, ) 상냥함. 누군가에게 상냥할 수 있다는 건, (무엇도 욕망하지 않아) 마음에 생겨난 엄청난 여유의 경지이거나, (찰나일지언정) 바라던 욕망이 채워져서 마음이 온순해진 상태이거나, (영혼을 소외시킴으로) 철저한 직업 정신이 발현될 때 가능해지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는 걸 알면서도, 이 조급함은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알처럼 손 마디마디로 흘러내린다 🤲 이작가야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사랑 💜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 더보기
[에세이] 살다 보면 날 것 그대로 표현해보자면, 살다 보면, 일을 저질러야 할 때가 있고, 일이 저질러지는 경우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문제를 일으켜야 할 때가 있고,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가끔, 모든 것이 선택-되어졌다고 생각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날은, 모든 것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선택-되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코헬렛(קהלת)의 이야기처럼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 더보기
[에세이] 습기로 가득찬 인간 집 안이 습기로 가득하다. 그 집에 사는 이도 습기를 먹어 습도가 높아졌다. 밖으로 나가본다. 바깥은 장마. 바깥은 습기였다. 습기로 가득하지 않은, 습기 그 자체였다. 우산을 들고, 습도가 낮은 곳을 향해본다. 버스, 책방, 카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집. 다들, 건조하게 지내나 궁금해졌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기억의 저장소 : 네이버 블로그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공간 더보기
[에세이] 머뭇거리, 다 시간이 갈수록 좋은 판단과 나쁜 판단의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생각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꾸 머뭇거리고 망설이게 되지만, 차라리 이러다 말을 잃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기억의 저장소 : 네이버 블로그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공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