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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난(orchid)

 

 

2011년 3월, 

KSCF에 처음 출근했던 날 부터 함께 머물던 난이 있었습니다. 

 

난을 키워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은 그 녀석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 듯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녀석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지요. 

하긴 생각해보면 저보다 사무실을 오래 지키던 녀석이기도 합니다. 

 

그 난은 저와 함께 2년 정도 시간을 보내며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었습니다. 

직사광선을 쐬어서도 안 되며, 보름마다 뿌리가 듬뿍 잠길 정도로 15-20분 물에 담가줘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누군가 돌보겠지 하는 핑계로 내버려 뒀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참 고맙게 잘 살아서 꿋꿋이 버텨주었었는데. 

 

오늘 공식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그 녀석을 품에 안고 꽃집으로 향해 회복 가능한지 여쭈어 봤지만

역시나 가망이 없고,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죽을 고비가 여러 번 있었어도 끝까지 살았던 그 녀석이 

왜 더 버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전과는 다른 사무실 분위기가 난의 생과 사를 결정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가슴 먹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물이 적절한 햇빛과 물, 흙, 온도 등을 통하여 자라는 건 당연하겠습니다. 

혹시 식물이 사람과 함께 한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들의 분위기 다시 말해 관계의 분위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작가야의 아틀리에

이작가야의 아틀리에(Atelier)입니다. Lee's A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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