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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책] 도로시 데이 "고백"을 읽고 1

 

"전통은 시간을 통해서 연장된 민주주의다. 전통은 모든 계층 가운데서도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 곧 우리 조상들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뜻이다. 전통은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다. 전통은 살아서 걸어 다니는 자들의 편협하고 거만한 소수독재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G.K.체스터턴Chesterton의 말이다. p32

 

그들은 믿었는가? 무엇을 믿었는가? 우리는 결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행복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겠는가? 전도자는 말했다.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p32

 

어찌되었건, 누구나 제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우리 인간의 그 근본적인 열망을 느꼈다. 그렇게 인간의 가슴에는 서로 교감하고픈 그리움이 있다. p54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의 행복이었다고, 그분은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작정이었다고. 그런데 도처에 널린 저 가난, 신문을 통해서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저 극빈의 소식들은 무엇이며, 인간이 과연 그 정도로까지 비참한 가난을 겪어야 하느냐고. p71

 

노예들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 자체를 없애 버리는, 그렇게 해서 사회질서를 뒤바뀌려고 노력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p83

 

7백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나는 친구가 없었다. 일자리도 없었고, 학교 친구들과도 헤어져 있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침묵이 나를 압박했다. 나의 침묵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전신으로 밀려들어와 목이 메는 듯했다.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쌓인 말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차라리 울음으로 내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p92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적용하는 정의의 기준이 결국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분열과 언쟁을 조장한다. 세상적 정의와 초월적 정의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아는 초월적 접근방식은 기꺼이, 순교자라는 일말의 의식도 없이 다른 쪽 뺨을 돌려대고, 가진 것을 포기하며, 낮은 자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찮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는 자처하지 않았지만, 급진주의자임은 분명히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급진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내 마음의 생각과 원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p105

 

가난한 자들, 천하고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하려는 이 마음에 방탕한 자들과 어울리고픈 왜곡된 욕망이 섞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나의 확신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든다. 내가 지금 과거의 일을 쓰고 있는 이상, 절대 그렇지 않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p105

 

우리 기자들의 기능이란 현 체제에 대한 고발을 엄청나게 강화하는 것, 말하지만 날마다 세상의 비참한 이야기들을 물어 나르고, 그 누적된 영향력으로 마침내 노동자들의 혁명봉기를 유발하는 것인 듯했다. 편집수뇌부는 입법과 교육을 신뢰했지만, 우리 젊은 기자들은 폭력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p116

 

대학에 같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 믿음이 살아 있는 사람, 혹은 자신의 믿음을 명백히 표명하는 사도시대적인 사람을 결코 만나 본 바 없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 불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함께 살 때나 떨어져 살 때나 우리 둘은 늘 급진주의자들과 어울려 다녔으므로, 개인의 도덕성에 부합하는 정도로 사회적 도덕성 역시 뛰어난 사람 혹은 다른 이들을 위한 이곳의 삶을 통하여 저곳에서 누릴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결코 만나지 못했다. p124

 

 

이작가야의 아틀리에

이작가야의 아틀리에(Atelier)입니다. Lee's A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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