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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장애물과 은총

20190622 청파교회 새벽설교 

장애물과 은총

<여호수아 4장 8-24절> 

8.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그들은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수에 따라 요단 강 가운데서 돌 열두 개를 메고 나와서, 그것들을 그들이 머무르려는 곳까지 가져다가 그 곳에 내려놓았다.
9. 여호수아는 요단 강 가운데, 언약궤를 메었던 제사장들의 발이 머물렀던 곳에 다른 열두 개의 돌을 세웠다. (그 돌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다.)
10. 주님께서 여호수아를 시켜 백성에게 명령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지시한 일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 서 있었다. 백성은 서둘러 강을 건넜다.
11. 백성이 모두 건너기를 마치자, 주님의 궤와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이 보는 앞에서 건넜다.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의 반쪽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지시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보다 앞서서 무장하고 건넜다.
13. 약 사만 명이 되는 이들은 무장을 하고, 주님 앞에서 전투를 벌이려고 여리고 평원으로 건너갔다.
14. 그 날 주님께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여호수아를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셨으므로, 그들은,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 모세를 두려워하였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두려워하였다.
15.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16. "증거궤를 메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 강에서 올라오게 하여라."
17. 그래서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에서 올라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18. 주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서 올라와서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마른 땅을 밟는 순간, 요단 강 물이 다시 원래대로 흘러 전과 같이 강둑에 넘쳤다.
19. 백성이 첫째 달 열흘에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동쪽 변두리 길갈에 진을 쳤다.
20. 여호수아는 요단 강에서 가져 온 돌 열두 개를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 자손이 훗날 그 아버지들에게 이 돌들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거든,
22. 당신들은 자손에게 이렇게 알려 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요단 강을 마른 땅으로 건넜다.
23. 우리가 홍해를 다 건널 때까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그것을 마르게 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요단 강 물을 마르게 하셨다.
24. 그렇게 하신 것은, 땅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신가를 알도록 하고, 우리가 영원토록 주 우리의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인 "여호수아 4장 8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지난주와 지지난 주에 나눴던 이야기의 요약과도 같습니다. 우선 말씀의 내용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 저희는 ‘돌’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에게 요단강 정 가운데로 가서 돌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함께하신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미래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푼 은혜를 전해주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 저희가 함께 살펴본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렸듯이, 오늘 본문은 방금 우리가 이야기한 부분을 한 번 더 되풀이해서 말해줍니다. 열두 지파는 여호수아가 시킨 대로 돌 하나씩을 가져와, 자신들이 머물던 장소에 둡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 열두 개의 돌을 하나의 탑으로 만들어 자신들이 머무는 장소에 세워 둡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지시한 일들이 모두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요단강 한 가운데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모두 건널 때까지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건, 열두 개의 돌을 갖고 돌탑을 쌓은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계속 건너는 가운데 진행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해 때와 같은 은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강을 건너자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육지로 올라왔고,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단강물이 전과 같이 둑 안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제사장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동쪽에 임시 거처를 잡게 되는데, 이 부분에 와서야, 열두 개의 돌을 세웠던 바로 그 장소의 이름이 ‘길갈’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리고 4장 초반에 있었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반복되는데, 여호수아는 '길갈'에 세운 이 기념비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훗날 여러분의 자손이 그 아버지에게 ‘이 돌들은 대체 무엇입니까?’하고 묻거든, 여러분은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강을 건넜다’하고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 나눴듯이,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푼 ‘은혜에 대한 기억’과 또 이 ‘기억’을 토대로 한 ‘역사와 전통’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추억에 잠기듯,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데, 그는 예전에 자신들이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마르게 했듯이, 현재에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음을 감격에 찬 듯 고백합니다. 

장애물이 있는 삶

사실 ‘성경 속 이야기‘는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을 알 수 있는데요. 혹시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 채셨습니까? 

성경 속 이야기를 보면, 어떤 대상 앞에 항상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평범하게 시작된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반드시 그 ‘장애물‘과 부딪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장애물‘을 통과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에 사로잡힌 자가 됩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묶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커다란 서사의 책과 같습니다. 이 ‘장애물’이라는 것은 사실 영화나 드라마가 그렇듯이, 어떤 극적인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해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홍해나 요단강 같은 성경 속 '장애물'은 어떤 극적인 긴장감을 주기 위한 인위적인 삽입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것', ‘평범한 사람이라면 살아가다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나온 시간을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에 '장애물'이 없었던 때가 있었나를 말입니다. 

 


장애물을 경험한 삶

저는 참 장애물이 많은 삶을 보냈습니다. 아주 오래된 것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큼직한 것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과거의 저를 떠올려보면, 잘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공부는 영 취향에 안 맞는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것을 생각해보자니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올라갈 때는 시험을 봤어야 했는데,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는 아주 턱걸이로 들어가게 되고 또 신학교에 들어갈 때도 안정권에 들지 못해 마음을 졸였던 생각이 납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대학원 입학도 그렇고, 목사 안수를 받는 과정도 그렇고, 삶에 있어 뭔가 '장애물' 없이 시원하게 진행된 것들이 얼마나 있었나 생각해봤는데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저의 인생에 불만이 많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좀 달려졌습니다. 그런 이전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높아지고 커져버렸을까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기준, 판단들이 너무 높고 너무 커져,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 마냥 모든 삶을 제 방식대로 만들어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장애물' 없이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미리 다 알아버렸었다면, 앞으로의 삶에 별 기대 없이 그냥 그렇고 그렇게 살아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의 ‘장애물’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은총도 기대하지 않았을 거고, 또 '장애물'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과의 어떤 긴밀한 관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인생에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것들이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축복의 통로’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랄 때

오늘 말씀 마지막 구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홍해와 요단강 물을 마르게 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그 '구원하는 손길'이 얼마나 강한지 알도록 하기 위함이고, 또 모든 사람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사실 우리의 솔직히 이러한 ‘장애물’이 없는 삶을 기대합니다. 어떤 ‘장애물‘은 넘어서기가 너무 힘겹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삶을 원하지만, 그러한 기도보다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오더라도 견뎌낼 힘을 주시길 기도하게 되고 또 때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께서도 지난 시간 겪었던 어떤 '장애물과 같은 일들'이나 또 '현재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이 있으실 겁니다. 바라기는, 자신들 앞에 놓여 있던 위기를 넘어서고,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노래‘를 불렀던 여호수아의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다시 시작하실 것입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덧입어 다시 한번 한 걸음 더 나아가보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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