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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하나님의 공평하심

20191116 청파교회 새벽설교

하나님의 공평하심

<여호수아 13장 8-14절>

8. 낫세 반쪽 지파와 함께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은 모세가 요단 강 동쪽에서 그들에게 준 유산을 이미 받았다. 주님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유산은 이러하다.
9. 그들은 아르논 골짜기의 끝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그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과 메드바에서 디본까지에 이르는 모든 평원지대와,
10. 헤스본에서 다스린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의 모든 성읍 곧 암몬 자손의 경계까지와,
11. 길르앗과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의 경계와, 헤르몬의 온 산간지방과 살르가까지에 이르는 바산의 모든 지역,
12. 곧 르바의 마지막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서 다스린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를 차지하였다. 모세가 이미 그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였지만,
13. 이스라엘 자손이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술과 마아갓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서 살고 있다.
14. 모세는 레위 지파에게만 유산을 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불살라서 드리는 제물이 그들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요단강 오른편 지파들의 장점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부터는 이스라엘 지파별 땅 분배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출애굽기>를 읽을 때만해도 멀고 까마득했던 ‘가나안 정복’이 어느 새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가나안 땅의 많은 부분을 점령했고,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지파에게 이 땅을 분배할 일만 남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알고 계시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12개의 지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3개의 지파 즉, 다시 말해 2개의 지파와 1/2개의 지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지파들의 이름은 ‘르우벤’,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쪽 지파입니다. 

이 지파들은 요단강 오른편에 위치하게 되는데, 요단강 왼편에 위치할 지파들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강 왼편에 위치한 지파들의 비해 큰 장점 하나를 갖게 되는데요. 그것은 강 왼쪽에 위치한 지파보다, 각 지파 당 차지하는 땅의 면적이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실제의 크기도 그러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요단강 왼편에 위치할 지파의 수는 9개 지파에 1/2개 지파가 더해진 ‘9개 반 또는 10개’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강 오른편에 위치한 민족이 더 살기 좋을 수박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방 민족과 살아야 하는 부담감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요단강 오른편에 위치한 지파들에게 신경 쓰이는 일 한 가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어떤 일인지 다들 아실 겁니다.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소수의 이방 민족이 껴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냐면, ‘그술과 마아갓’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이렇게 쓰여 있는데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술과 마아갓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서 살고 있다.” (13)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들이 살던 땅을 점령했음에도 쫓아내지 않은 이유가 따로 등장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요단강 오른편에 위치는 이 세 지파는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강 왼편에 있는 이들에 비해 넓은 땅을 분배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 민족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했습니다. 

인간의 공평함에 관심

사실 이런 부분이 가볍게 여길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저는 이런 단순한 말씀 속에도 하나님의 ‘공평하심’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자는 구약의 말씀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지는데요.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는 성경에는 어떤 ‘대립’ 또는 어떤 ‘투쟁’이 나타나는데, 그 대립은 단순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의 악함’의 대립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대립’은 바로 이것인데, 사람이 사는 땅을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려는 ‘하나님의 꿈’과 더 많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의 꿈’ 사이의 대립이라고 말했습니다. 

좀 어려운 말인데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본문도 그렇고, 방금 드린 이야기도 그렇고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인간의 ‘공평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불공평이 인간에겐 공평

이 ‘공평’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예화가 있어 들려드릴까 합니다. 이현주 목사님이 쓴 짧은 동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참 착하게 살았구나. 아주 잘 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었으며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위로를 주었으니 내가 주는 상을 받아라. 이제부터 너는 내 앞에서 내가 주는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하늘의 황홀한 음악을 즐기며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하여라.” 

그러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황송무지로소이다. 생각컨데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준 기억이 없습니다. 더구나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다니요, 결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니신지요. 황송하옵니다.” 

“아니다. 내가 어찌 사람을 잘못 보겠느냐? 너에게 그런 기억이 없는 까닭은 네가 내 말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일 하나 하고는 아래 위로 생색을 내는 것들은 이미 땅에서 받을 상을 다 받았으니 내가 줄 게 없다만 너처럼 제가 무슨 착한 일을 하는 줄도 모르면서 착한 일을 한 사람을 보면 나는 좋아서 죽겠구나! 오, 나의 착한 아이야, 이리 오너라. 내 오른편 자리에 앉도록 하여라.” 

그러자 사람이 더욱 펄쩍 뛰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옵니다! 하나님, 만일 제가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저의 공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손과 발과 눈과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과 피와 생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없었다면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한 일인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상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만 하옵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듣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과연 네 말이 지극하구나. 네가 나에게 준 모든 기쁨과 행복을 갑절로 하여 너에게 주노라.” 그 사람에 대한 심판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째서 평생을 도둑질, 이간질, 사기, 폭력에다 공갈과 협박으로 살았느냐? 약한 사람을 때리고 애매한 사람을 능욕하고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고… 너 이 고얀 놈! 차마 뭐라고 더 말할 수가 없구나. 너는 저 불붙는 지옥으로 내려가 거기서 영원한 고통을 맛보아라. 네가 남에게 입혔던 온갖 상처를 두 배로 받아라.” 

그러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황공하오나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언제 남의 물건을 훔쳤단 말씀입니까? 사기에다 폭력을 휘두르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로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게 틀림없습니다. 다시 한 번 명단을 살펴보시지요.” 

하나님께서 성을 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막중한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하다니? 너 이놈, 하나님을 뭘로 보고 있는 거냐? 다른 것은 관두고 나를 우습게보고 있는 이 죄만 가지고도 너는 당장 지옥행이 마땅하다! 그러나 네가 그런 나쁜 짓을 한 기억이 없다는 말은 옳다. 너도 악한 일에는 일찍이 도사(道士)가 되었으므로 오른손이 하는 나쁜 일을 왼손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기를 치면서도 자기가 사기를 치는지 몰랐고 남의 권리를 도둑질하여 제 배를 채우면서도 그게 도둑질인 줄 알 턱이 있었겠느냐? 너 같은 자를 보면 내 속이 다 뒤틀린다. 네 몫인 영원한 벌을 받아라.” 

사람이 두 손을 휘두르며 대꾸했습니다. “하나님, 그러지 마십시오. 그래요, 제가 그 모든 나쁜 짓을 했다고 하십시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제가 한 짓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손과 발과 눈과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과 피와 생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없었다면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몸으로 한, 즉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옵니까? 왜 그 책임을 제가 져야 합니까? 만일 제가 받을 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우물쭈물하자 하나님이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그 벌은 너에게 손과 발과 눈과 함을 준 내가 받아야 한단 말이냐? 어허, 이놈이, 제 아비 아담을 쏙 빼닮았구나. 여봐라, 이놈이 제 발로 지옥을 가지 않으려 하니 너희가 끌고 가거라!” 

천군(天軍)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를 끌고 가는데,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십니다. 먼젓번 친구는 제가 하지도 않았다는데 온갖 상을 주시고 나에게는, 역시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온갖 벌을 주시니 어떻게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겠습니까?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불공평이 너에게는 공평이니라. 너는 나의 몸뚱이로 너의 삶을 살았고 이 친구는 나의 몸뚱이로 나의 삶을 살았으니 어찌 두 사람이 같다고 하겠느냐?” 

(이현주 목사, “불공평한 하나님”, <꽃자리> 기고)

때론 하나님의 불공평이 누군가에겐 공평일 수 있음을 그리고 하나님의 공평하심으로 누군가에겐 뜻하지 않은 은총이 주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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