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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솔로몬

20191120 청파교회 수요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솔로몬

 


안녕하세요. 오늘 함께 나눌 인물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으시죠? ‘지혜’입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열왕기상 1-11장과 역대하 1-10장에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의 이야기는 더 있죠. 그게 어디입니까? 전도서와 아가입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성경에는 솔로몬의 이야기가 꽤 많이 실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하면 지혜를 떠올리는데, 그 이유는 성경이 그를 지혜로운 통치자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째서 ‘지혜로운 자’인지 알 수 있는 네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살펴보면요. 

① 지혜를 청한 자(열왕기상 3:1-15)

어느 날, 솔로몬은 기브온에 제사를 지내러 갑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이렇게 묻죠.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말씀드리되, 한 가지를 구하게 되죠. 열왕기상 3:9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솔로몬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뿐 아니라 부귀와 영화까지 주셨습니다. 

② 손로몬의 판결(열왕기상 3:16-28)

어느 날, 두 명의 여자가 솔로몬에게 나타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상대가 자신의 아이를 빼앗아 갔다며 서로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걸 알았던 솔로몬은 어떤 해결책을 내립니까? 신하들에게 칼을 가져오라 명하여, 살아남은 한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말합니다. 두 명의 여자에게 그 아이의 반쪽씩 서로 나눠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연히 친엄마는 어떤 반응을 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며, 아이를 죽게 할 바에야 차라리 상대에게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반응한 여인을 보고, 솔로몬은 그 여인이 아이의 진짜 엄마임을 알아채게 됩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판결은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그의 지혜에 탄복합니다. 

③ 스바의 여왕의 방문(열왕기상 10:1-13)

스바 여왕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스바(sheba, 시바)’는 지금의 아라비아반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예멘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어느 날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몇 가지 테스트를 하죠. 그런데 그녀는 솔로몬이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게 하나도 없음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왕상 10:7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오히려 내가 들은 소문은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혜와 복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녀 또한 솔로몬의 지혜에 탄복합니다. 

④ 솔로몬 지혜의 완성, ‘예수’(누가복음 11:31)

그리고 복음서 가운데 솔로몬의 지혜가 등장하는 부분이 있죠. 누가복음 11장 31절 말씀인데요. 예수께서는 헛된 표징만을 구하는 이 세대 사람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부분이었는데요.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이 구절로 보면, 대략 예수의 지혜가 어느 정도로 고백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여인을 거느린 솔로몬

어쨌든 지혜로운 자였던 이 솔로몬은 성경 여러 곳에 등장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는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그는 지혜 말고도 이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인데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사랑입니다. 

솔로몬은 많은 여인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열왕기상 11:3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는 자그마치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두었는데,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솔로몬에게는 자그마치 1,000여 명의 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사실은 성경은 그렇게 많은 여자를 거느렸다고 솔로몬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왕이 여러 명의 여인을 둔 건, 그 당시나 근대 이전 시대에도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솔로몬에게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여인들은 다양한 (이방) 민족 출신들이었는데, 당연히 타민족은 그들이 믿는 신이 있었을 테고, 솔로몬이 늙자 솔로몬의 아내들은 그를 꾀어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솔로몬을 향해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악행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주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나, 솔로몬은 그러하지 못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역시 성경 어딜 보아도, 어떤 위대한 이도 누구나 흠이 있고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겪어야 할 과정을 겪지 않으면

그래서 결국 여러 명의 여인을 둔 솔로몬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났냐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그에게서 왕국을 빼앗아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리던 솔로몬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분열로 마감하게 되죠.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솔로몬 죽음 이후 두 개의 나라로 나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남유다-북이스라엘입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특별할 거 없이 시작해서 지혜로운 군주로 죽음을 맞았지만, 반대로 ‘솔로몬’은 지혜롭고 부유하게 시작했지만 여러 갈래로 흩어진 자기 영혼 때문에 주위마저 분열을 초래한 군주로 끝맺게 되었죠. 

사실 이 상황을 분석심리로 보면 이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던 과정이 기억나시나요? 그는 크고 작은 전투에 나서기도 했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매우 고생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어떠합니까? 다윗의 후계자였던 솔로몬은 왕이 되는 과정에 싸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전쟁을 치르고 또 사람들을 모아내는 능력에 있어서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는 왕으로서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정을 겪지 못했던 것이죠. 

여러 경험과 위기를 통해 내면의 힘을 길렀어야 했는데, 너무 쉬운 방식으로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입니다. 다윗-솔로몬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생각해 볼 게 있겠습니다만, 이런 관계는 스승-제자, 어머니-딸, 어머니-아들 등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 가능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세습)

하나님 사랑, 연인 사랑

하지만 중요한 건, 솔로몬에게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솔로몬에 관해 이런 말을 합니다.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였으며,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랐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왕상3:3) 그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솔로몬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어디에 있냐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 무관하지 않다는 부분입니다. 

처음 솔로몬의 등장은 위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칭찬받은 당시에도 여러 명의 아내를 곁에 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었습니다. 결국, ‘세월의 흐름’과 ‘수백여 명의 아내를 뒀던 그 상황’이 말년에 그를 위태롭게 한 것이지 그 이전까지는 솔로몬과 하나님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셀름 그륀 신부는 이 이야기를 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인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사랑하려는 노력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정렬의 사랑

그래서 솔로몬이 했던 것이 무엇이었냐면, 여인을 향한 에로틱한 사랑을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하게 되었고 이 노래가 바로 ‘아가’에 담긴 것입니다. 

‘아가’ 첫 장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죠. “(남자) 아름다워라, 나의 사랑. 아름다워라, 비둘기 같은 그 눈동자. (여자) 나의 사랑, 멋있어라. 나를 이렇게 황홀하게 하시는 그대! 우리의 침실은 푸른 풀밭이라오.” (아가 1:15-16) 그리고 하나 더.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서 부탁한다. 우리가 마음껏 사랑하기까지는,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다오.” (아가 2:7) 표현이 기가 막힙니다. 

아마 아가에 등장하는 이 남자는 여성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모양입니다. 아가 4:9-10을 보면요.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오늘 나 그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대의 눈짓 한 번 때문에, 목에 걸린 구슬 목걸이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달콤한 그대의 사랑, 그대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한다. 그대가 풍기는 향내보다 더 향기로운 향기름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여성 또한 남자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 같습니다. 아가 5:16을 보면요. “그의 입속은 달콤하고, 그에게 있는 것은 모두 사랑스럽다.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이 사람이 바로 나의 임, 나의 친구이다.” 

이들의 고백이 민망할 만큼 열정적입니다.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 이렇게 정열적인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바라거나, 이런 사랑을 하고 계실 때입니다. 어떠신가요? 뭐 생각나는 사람이나 생각나는 때가 있으십니까? 

사랑에 빠진 경험과 하나님

이 사랑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걸 다들 아실 겁니다.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생명을 넘쳐 흐르게 하죠. 무기력하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평소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기도 하죠. 

그런데 한 여성을 사랑하거나 한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그 두 사람 관계에만 영향을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연인관계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매우 당연하고, 좋은 결과라고 봅니다. 사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랑에 빠지면 전 존재가 마법에 걸리는 경험을 하게 되죠. 

그런데 여러분, 한번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으십니까? 만약 내가 한 남성이나 한 여성을 만나려고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상대가 만약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어요. 연인관계에서 오는 아픔이나 기쁨 특정한 감정이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그런 분 만나고 싶으시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주로 위대한 여성이 어리석은 남성을 구원해주는 경유가 많죠. 

하지만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강렬한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뭔가 냉정하고 공허하며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해야 하는 어떤 의무 정도로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감정의 요동침이 너무 무서워서 겁을 먹을 순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많은 사람은 평온한 일상이 깨질까 봐 사랑에 빠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런 말을 하는데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사랑에 항상 우리를 열어 놓을 때 비로소 제대로 맺게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맥락에서 계시록의 말씀이었던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계3:16) 라는 말씀이 참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인과 사랑은 잘하고?" "그건 끝냈어요." "왜 그랬나 모르겠다." "균형이 깨질까봐요" "내 이야기를 잘 듣게. 때론 사랑 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거야."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中)​​

사랑을 통해 배우라

물론 성경은 사랑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위험하죠.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나 때로 성경은 오직 사랑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실수 때문인데요. 사랑하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빼앗기면, 평소의 내가 아니게 됩니다. 내 통제 밖의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연인이라고 하는 것은 지켜야 할 선을 넘고 때론 두 사람 사이의 법을 어기게 되죠. 그러나 사랑이 가진 힘은 또 뭡니까? 한창 연애할 때를 떠올려보세요. 서운한 게 있어서 절대 집 밖에 안 나가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한 통의 전화에 마음이 완전히 녹아버리는 경험들이 있을 실 거예요. 그래서 솔로몬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 10:12)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정말 종잡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러고 보면, 어떤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한껏 사랑하면서 실수를 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는 거죠. 한번 사는 인생 아닙니까? 

우리가 주로 뭔가를 배운다고 할 때가 언제입니까? 말씀을 읽거나 책을 보거나 이렇게 강의를 들으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 가장 좋은 배움은 실수나 잘못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기쁨이나 어떤 도취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독, 버림받음, 우울도 안겨 줍니다. 그래서 사랑은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고 새로운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결국, 사랑하라는 것, 연인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라는 하나님의 과제일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열정은 우리에게 사랑을 다시 회복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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