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일곱 인물 정리

20191127 청파교회 수요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아브라함-야곱-요셉-모세-삼손-다윗-솔로몬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요 성서학당 마지막 모임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여러분께 여쭈어봤습니다. 아주 치열한 공방 끝에, 지난 시간에 나눴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나(자신)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의견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내가 받은 유익함, 내가 받은 즐거움, 내가 받은 불편함이 무엇이었는지 편하게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순례자 아브라함

① 익숙함에서 떠나라

아브라함의 신앙이 언제 잘 형성되어 갔냐면, 그가 태어난 나라, 그의 가족, 그의 부모에게서 벗어나면서부터입니다. 창세기 12장의 말씀이 읽어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 다섯이었다. (창12:1-4)

아브라함은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우르’를 떠났고, 최종적으로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땅 ‘하란’과 그의 ‘가족’을 떠났습니다. 떠난다는 말-벗어난다는 말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② 과거의 감정에서 떠나라

우리가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과거의 감정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 즐거웠던 일이나 특히 어머니 곁에 있을 때 느꼈던 그 안정감을 그리워합니다. 인간은 삶의 많은 부분에서 그 안정감을 누리려고 애를 씁니다. 

과거의 감정에서 떠난다는 것은, 곧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고, 자기 삶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자유로운 삶,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③ 보이는 것에서 떠나라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번째로 보이는 것들에서 떠나야 합니다. 특히 남성은 눈에 보이는 현상 즉, 성공이나 재산이나 명성 같은 것에 훨씬 민감합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삶의 문제는 움직이는 삶을 억지로 붙들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④ 실수를 통해 배우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실수에는 뭐가 있나요? ① 아브라함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여동생(누이)이라고 속입니다. 그리고 ② 하녀 ‘하갈’과 그녀에게서 나은 이스마엘이 내쫓김당했을 때 그들을 책임 있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③ 사라와 자신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삭’을 희생양으로 바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2. 아버지가 되어 가는 야곱

① 형을 피해 달아나는 야곱

야곱은 홈-보이(Home-boy)였습니다. 그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처음 성경에 등장했을 때는 어머님의 그늘 아래 살던 ‘유약한 사람’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또한 머지않아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게 됩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내면의 ‘어두운 부분’과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쨌든 야곱은 먼저 형 에서의 위협을 알아채고 도망을 칩니다. 그로 인해, 야곱은 어머니와 자연스레 떨어지게 됩니다. ‘안셀름 그륀’은 이 대목을 보고, 야곱이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장면으로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일을 만나면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한 발자국 물러나는 편을 택합니다. 불편한 것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 그림자: ‘그림자’는 심리학자 ‘칼 융(C.C Jung)’의 이론에 나오는 용어입니다. ‘그림자’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내 안에 있는 ‘어두운 부분’을 말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내가 두려워하는 어떤 부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요. 내 안에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떤 부분을 가리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② 자신을 축복하는 하나님과의 만남

그런데 어머니를 떠나고 형을 피해 달아나는 야곱의 행보가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계기가 됩니다. 야곱은 도망을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외삼촌이 계신 밧단아람으로 가던 야곱은 베델(루스, 창28:19)에서 잠이 듭니다. 그곳에서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은 ‘층계 꿈’이었습니다. 계단 꿈 말입니다. 그 층계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창 28:12). 

그곳에서 야곱은 처음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야곱이 만난 ‘자신의 무의식’이었을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 무의식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야곱은 그가 성장하는 가장 첫 단계가 됩니다. 이제 삶의 의미는 자신의 의지와 지혜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축복)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③ 자신의 그림자와 씨름

그리고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정체 모를 남성과 만납니다. 갑자기 두 존재가 씨름이라는 싸움에 돌입하게 됩니다. 안셀름 그륀은 밤에 나타난 이 정체 모를 남성을 두고, ‘야곱의 그림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두려움을 회피해서는 안 됐습니다. 형에 대한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그대로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체 모를 남성과 ‘싸움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야곱은 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했습니다. 

3. 마술사 요셉

① 자기 내면과 일치를 이룬 요셉

요셉은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형들이 요셉을 경쟁상대로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러한 상황에서 불 난 집에 기름을 붓죠. 사실 형들이 요셉을 질투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단순히 아버지의 편애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뭔가 특별하게 여기는 요셉의 태도가 문제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꿈대로 믿고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형들을 더욱 공격적으로 만든 이유이자 원인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형제애’가 없어서였다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를 살아 있게 만드는 삶의 원천, 삶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원천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깊은 ‘무의식의 세계’ 혹은 ‘내적 영감의 세계’였습니다. 요셉은 자기 내면과 깊은 일치를 이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를 통틀어 요셉이 지닌 ‘마술의 세계’라고 칭했습니다. 

② 첫 번째 어둠: 구덩이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로 모의합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서운함과 질투가 뒤섞여 분출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장남이었던 ‘르우벤’이 요셉을 살려 아버지께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형들은 죽이기를 포기하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버리지요. 그리고 장사꾼 무리가 지나갈 때, ‘유다’는 ‘요셉’을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기자고 제안하죠. 여기까지가 요셉에게 일어난 1차 사건입니다. 

여기서 요셉은 첫 번째 ‘어둠’을 경험합니다. 이 경험은 ‘구덩이에 던져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진다는 말은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셉은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 첫 번째 ‘죽음’을 경험합니다. 

③ 두 번째 어둠: 감옥

장사꾼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의 경호 대장이었던 보디발에게 그를 팔아넘기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 요셉의 일들이 잘 풀리게 됩니다. 그는 직장까지 갖게 되는데 그의 첫 번째 직장은 보디발 재산을 관리하는 재산관리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그리 오래가진 않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죠. 동침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과 보디발에 대한 마음 때문에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칩니다. 

그런데 자신을 붙잡는 보디발 아내를 뿌리치다 그 현장에 자신의 겉옷 하나를 두고 가게 되죠.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요셉이 자신과 동침하려 했다는 증거로 ‘요셉의 옷’을 두고 그에게 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그녀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했을 겁니다.  

그로 인해 보디발은 몹시 분노하게 되고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에게 일어난 2차 사건입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두 번째 ‘어둠’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④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한 요셉

요셉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요셉의 특별한 면모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누군가의 꿈을 주의 깊게 듣고 해석할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가진 특별한 재능이자 재주였습니다. 이 재주가 요셉에게 복이 되어 나라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한 사람이었고 그 능력을 억압하지 않고 잘 활용한 사람이었습니다. 

4. 지도자 모세

① 버려짐으로 깨어난 모세

모세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늘 의식하고 살 순 없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사람이 더 깊어지고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림을 받거나 어떤 굴레로부터 벗어 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안셀름 그륀’ 신부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안에도 ‘신의 자녀’로서의 형상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고 그 형상을 일깨울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성’과 마주하게 되면, 하나님이 부여한 재능과 소명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② 실패한 모세, 실패가 능력이 된 모세

모세가 어른이 되어 지내던 어느 날,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우연히 이집트 사람 하나가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모세는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여 이집트 사람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 시체를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리죠. 

그리고 다음 날, 모세는 또 우연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중재하려고 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모세를 살인범으로 고발하게 되죠. 모세는 자신이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 두려워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미디안’으로 가게 되죠. 

모세는 좌절하게 됩니다. 이방 땅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가에 속한 한 사람으로 ‘지도자’가 되려 했던 그의 첫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졌는데요. 그런데 모세의 인생에서 그가 경험했던 ‘실패의 경험들’이 나중 다른 이들을 이끄는 능력이 됨을 보게 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지도자)

③ 무기력하고 자신감 없는 모세

모세는 확신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쓸모없음’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양과 염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3:2). 그때 가시덤불 사이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너를 ‘바로’에게 보낼 것이고 너는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당신들을 향한 계획’이 있음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말솜씨가 형편없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피하려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뭔가 대단하고 확신으로 가득 찬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무력감을 느낀 사람만이 다른 누군가를 대할 때, 더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 전사 삼손 

① 두 여인과의 만남

‘삼손’하면 무한한 힘, 자유분방함, 대담성 등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는 날 때부터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나실인’은 히브리어 단어 ‘나지르(נזיר)’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거룩하게 되는’ 또는 ‘분리된’ 입니다. 

그는 아주 힘이 셌는데, 그가 가진 힘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그 ‘힘의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하나님은 삼손을 방황하게 했습니다. 

삼손은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블레셋의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움 없이 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 결혼식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객들과 수수께끼 내기를 하게 됩니다. 내기서 실패한 그는 방황하죠. 

그리고 두 번째 여인 ‘들릴라’를 만나는데, 그는 그녀로 인해 자신의 힘의 원천을 잃게 됩니다. 

② 주도적인 자, 갈등을 겪는 자 - 삼손

우리는 삼손의 모습에서 몇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특징은 ‘전사의 이미지’입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전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는 인간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기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책임지고 또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너무 의존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기대에 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주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때론 갈등을 겪으면서 성숙해지게 됩니다. 

③ 전능하지 않은 자 삼손

그는 약점이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점이 우리가 잘 아는 ‘머리카락’입니다. 약점을 받아들이고 약점을 활용하는 자가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삶을 열정적으로 살려는 사람이나, 삶의 의지나 의욕이 강한 사람은 ‘실수’하거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들은 실수나 상처가 두려워 소극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게 되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삶’을 살려는 사람,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피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알셀름 그륀 신부는 말합니다. 그래서 살면서 ‘의도적으로 실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수’로 시작된 것이 ‘성장’과 ‘성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완벽한 삶은 없을뿐더러, 완벽은 곧 권태와 지루에 빠지게 됩니다. 

6. 왕 다윗

① 과도기에 등장한 사무엘

사무엘이 등장하는 시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이스라엘에 최초로 왕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왕이 없던 시절의 이스라엘에서 왕과 같은 역할은 누가했습니까? 사사들이 했습니다. 그렇기에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사사 중심의 사회(사사시대)에서 왕 중심의 사회(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등장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시대든 특별한 인물은 주로 ‘과도기’에 등장합니다. 이 ‘과도기’라는 것이 주로 익숙한 것이 낯설어질 때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행대, 사춘기, 탄생, 애도) 

②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싸운 자, ‘다윗’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처음엔 어머 어마하게 꾸몄습니다. 엄청난 무장을 했습니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걸쳤고, 허리에는 칼까지 찼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알고서 이 모든 걸 내려논채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비를 찼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준비 없어 그저 맨몸으로 전장으로 나간게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장비를 착용해서 나간 것입니다. 절대 맨몸으로 나간 게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내려 놓은채, 무작정 하나님께 뭔가를 빌고 바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금 나와라, 뚝딱식 또는 램프의 요정 지니식의 믿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이 개입하실 영역은 열어두되 내가 가진 힘과 이성 또는 나의 능력은 계속해서 활용하는 것이죠.

③ 감정과 사랑이 풍부한 다윗

사울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은 다윗을 무척이나 아꼈죠. 아버지보다 더 그를 아꼈습니다. 아버지가 다윗을 위협할 때에도 그는 다윗 편에 섭니다. 

결국 ‘다윗과 사울의 사이’는 어디서 마무리가 되냐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음을 맞이하며 끝이 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을 저주하지 않고 그와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가를 지어 부르게 되죠. 

다윗은 결코 잔혹한 전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정 혹은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④ 실수하는 다윗, 돌이키는 다윗

다윗이 지은 실수는 모두 다 아시리라 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용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하게 되고 그 여인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죠. 그래서 그 여인을 불러들여 동침하게 되고, 그 여인은 다윗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어머니: 마아가)의 반란에 의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고, 다시 도망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을 만나 한 번 더 그가 잘못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가진, 다른 왕들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예언자의 입을 막거나 봉쇄하지 않고, 그 비난을 감내합니다. 그는 자기 안에 이면이 있다는 사실과 실수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받아들였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것도 시인합니다. 

다윗은 ① 자신의 잘못을 대면할 줄 아는 사람 ② 늘 성공만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7. 연인 솔로몬

① 지혜자 솔로몬

- 지혜를 청한 자(열왕기상 3:1-15)

어느 날, 솔로몬은 기브온에 제사를 지내러 갑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이렇게 묻죠.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말씀드리되, 한 가지를 구하게 되죠. 열왕기상 3:9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솔로몬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뿐 아니라 부귀와 영화까지 주셨습니다. 

- 손로몬의 판결(열왕기상 3:16-28)

어느 날, 두 명의 여자가 솔로몬에게 나타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상대가 자신의 아이를 빼앗아 갔다며 서로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걸 알았던 솔로몬은 어떤 해결책을 내립니까? 신하들에게 칼을 가져오라 명하여, 살아남은 한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말합니다. 두 명의 여자에게 그 아이의 반쪽씩 서로 나눠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연히 친엄마는 어떤 반응을 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며, 아이를 죽게 할 바에야 차라리 상대에게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반응한 여인을 보고, 솔로몬은 그 여인이 아이의 진짜 엄마임을 알아채게 됩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판결은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그의 지혜에 탄복합니다. 

- 스바의 여왕의 방문(열왕기상 10:1-13)

스바 여왕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스바(sheba, 시바)’는 지금의 아라비아반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예멘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어느 날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몇 가지 테스트를 하죠. 그런데 그녀는 솔로몬이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게 하나도 없음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왕상 10:7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오히려 내가 들은 소문은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혜와 복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녀 또한 솔로몬의 지혜에 탄복합니다. 

- 솔로몬 지혜의 완성, ‘예수’(누가복음 11:31)

그리고 복음서 가운데 솔로몬의 지혜가 등장하는 부분이 있죠. 누가복음 11장 31절 말씀인데요. 예수께서는 헛된 표징만을 구하는 이 세대 사람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부분이었는데요.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이 구절로 보면, 대략 예수의 지혜가 어느 정도로 고백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② 많은 여인을 거느린 솔로몬 

솔로몬은 많은 여인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그마치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두었는데,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솔로몬에게는 자그마치 1,000여 명의 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사실은 성경은 그렇게 많은 여자를 거느렸다고 솔로몬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에게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여인들은 다양한 (이방) 민족 출신들이었는데, 당연히 타민족은 그들이 믿는 신이 있었을 테고, 솔로몬이 늙자 솔로몬의 아내들은 그를 꾀어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솔로몬을 향해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악행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주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나, 솔로몬은 그러하지 못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역시 성경 어딜 보아도, 어떤 위대한 이도 누구나 흠이 있고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③ 겪어야 할 과정을 겪어야 한다

다윗은 크고 작은 전투에 나서기도 했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매우 고생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솔로몬’은 왕이 되는 과정에 싸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을 치르고 사람들을 모아내는 능력에 있어서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는 왕으로서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정을 겪지 못했던 것이죠. 

여러 경험과 위기를 통해 내면의 힘을 길렀어야 했는데, 너무 쉬운 방식으로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입니다. 

④ 하나님 사랑과 연인 사랑의 연관성

성경은 솔로몬에 관해 이런 말을 합니다.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였으며,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랐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왕상3:3) 그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솔로몬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어디에 있냐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 무관하지 않다는 부분입니다. 

알셀름 그륀 신부는 솔로몬의 이야기를 보며, 여인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있게 사랑하려는 노력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⑤ 사랑에 빠진 경험과 하나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생명을 넘쳐 흐르게 하죠. 무기력하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평소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기도 하죠. 

그런데 한 여성을 사랑하거나 한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그 두 사람 관계에만 영향을 주고 끝나지 않습니다. 연인관계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매우 당연하고, 좋은 결과라고 봅니다. 사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랑에 빠지면 전 존재가 마법에 걸리는 경험을 하게 되죠. 

⑥ 사랑을 통해 배우라

물론 성경은 사랑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위험하죠.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나 때로 성경은 오직 사랑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실수 때문인데요. 사랑하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빼앗기면, 평소의 내가 아니게 됩니다. 내 통제 밖의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연인이라고 하는 것은 지켜야 할 선을 넘고 때론 두 사람 사이의 법을 어기게 되죠. 사실 그러고 보면, 어떤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한껏 사랑하면서 실수를 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는 거죠. 

가장 좋은 배움은 실수나 잘못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사랑은 기쁨이나 어떤 도취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독, 버림받음, 우울도 안겨 줍니다. 그래서 사랑은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고 새로운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결국, 계속해서 사랑하라는 것 성장하고 성숙하라는 하나님의 과제일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열정은 우리에게 사랑을 다시 회복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 보입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