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에세이 452

키스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 문제는 늘 우리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 "어느 자리에서도, 어느 시간에서도 희망보다 더 강렬한 것도, 희망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것도 없다. 영화 속 연인들이 늘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키스의 시간은 얼마나 짧으며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첫 키스가 날카로운 것도 그 때문이다." (황현산, , 난다, 2024, p.272) 사람은 참 단순한 동물이기도 해서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할 때 그는 크게 절망하거나 그것을 끝까지 희망한다. 물론 여기서 절망과 희망은 대립의 개념이 아니다. 절망하기에 그것을 가질 때까지 끝까지 희망한다. 사람이 그러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소유로부터 자유롭다고 한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거다. 희망은 부재의 다른 표현이다. 부재..

Salon 2025.06.18

공생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 조깅을 위한 러닝 고글을 샀다 "공생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착취하는 거라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하지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모든 생물종은 설계되었다고, 그들에게서 이타성을 읽어내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바람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나희덕, , 문학동네, 2025, p.20-21) 공생은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생물학자들의 편에서 보자면, 모든 생물종은 이득을 얻기 위해 최소한의 것을 내어주기 마련이고 이것이 공교롭게도 공생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생선을 죽지 않고 육지까지 데려오기 위해 천적을 그 통에 넣어주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아무튼 우리가 생물의 공생 관계를 보며 거기서 이타성을 읽는다면 그것은 그저 인간의..

Salon 2025.06.13

크세주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 어깨가 뻐근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뜻의 '크세주'는 널리알려진 것처럼 서양에서 에세이란 장르를 창시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몽테뉴의 에서 가져온 말이다. 몽테뉴는 이 말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의심하는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담았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방법적 회의주의라고 부르는데,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지식을, 특히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의심해 본다는 뜻이다. 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앎의 끝일 수 없다. 그 지식은 그의 지적 조건과 근면성과 주어진 자료에 따른 ..

Salon 2025.06.12

무지

2025년 6월 10일 화요일 / 어제는 덥고 오늘은 서늘하고 "세네카의 에는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 Homines, dum docent, diseun'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동일, , 흐름출판, 2023, p.6) 자주 듣고 자주 사용한 말이지만 출처를 몰랐다. 로마 제국 시절 사람인 세네카가 했던 말이니 그 출처가 참 오래되기도 했다. 그럼,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고 말할 때 그가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가르치는 사람은 말 그대로 가르치는 사림이기에 배우는 자의 정확히 반대편에 선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가르치며 배운다니. 대체 뭘? 사람은 누군가를 가르쳐 봐야 자신이 그것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혹은 자신이 알던 게 전혀 알지 못하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를 비롯해 누군..

Salon 2025.06.10

생명

2025년 6월 5일 목요일 / 후쿠오카 여행에서 복귀 "바타유는 『에로티즘」에서 성행위를 '내적 충만함의 방출'로 정의하기도 했다. 생명은 늘 충만함을 지향하기에 그 방출은 위반과 탈선에 해당한다. 그리고 위반과 탈선은 죽음과 연결된다. 성행위로 체험하는 이 짧은 죽음은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한 풍속의 전면적 쇄신의 은유일 수 있다." (황현산, , 난다, 2024, p.215) 재밌는 걸 발견했다. 생명은 늘 충만함을 지향한다. 무슨 말인가? 사람은 내 안에 계속 뭔가를 채워야만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실제로 뭔가가 채워지면 살아날 수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아주 단순한 예이고, 물리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사람은 자기 안에 뭔가를 채우게 되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데..

Salon 2025.06.05

희망

2025년 5월 29일 목요일 / 강의의 끝, 여유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땅 위에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 (루쉰, ) 황현산, , 난다, 2024, p.198 재인용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찾았는데, 바로 루쉰의 이야기이다. 그의 단편소설 을 보면 맨 마지막에 희망에 관한 주인공의 독백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선생님께서는 분명 루쉰의 이야기를 읽으셨을 거고 아무래도 루쉰의 이야기에서 감명을 받아 자신의 고백으로 변형시켜 말씀하신 것 같다. 희망을 말하기 참 사치스러운 시대가 됐다. 당장 먹고살 일이 급급해졌기 때문이다. 생존 자체가 급선무인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기 참 난감하지만, 책을 읽다가 희망의 한 대목을 발..

Salon 2025.05.29

낭비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 봄에 원래 이렇게 비가 많이 왔나 "간단히 말하자.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언어는 그 인간의 모국어다. 외국어는 컴퓨터 언어와 같다. 번역 과정을 거칠 때의 논리적 정확성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낭비를 용납하지 않는 그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지식과 의식의 깊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낭비에 해당하며, 그 낭비에 의해서만 지식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황현산, , 난다, 2024, p.144) 아주 오랜만에 에세이를 쓴다. 다른 글을 쓰느라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핑계이다. 아무튼 황현산 선생이 말한 이 글은 어려운 단어들이 곳곳에 침투해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지식에는 낭비가 필요하며 인간은 이 낭비로 발..

Salon 2025.05.16

어린 왕자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 오랜만에 다시 글쓰기 "지구는 어린 왕자를 바꿔놓았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권력자와 상인, 염세가와 허영쟁이를 만났고, 착실한 공무원과 학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황현산, , 난다, 2024, p.138) 어린 왕자는 어릴 때 알았지만 그 시절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책을 펼치게 되었고 무엇보다 어린 왕자는 나의 지난 추억..

Salon 2025.04.29

종이책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 고난주간에 더 한 고난들 "그러나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은 종이로 출판된 옥스퍼드 사전이다. 책과 잉크의 냄새가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고, 한 낱말을 찾다가 다른 낱말에 한눈을 팔 수도 있으며, 책의 수택에 연구자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전을 뒤적이다 피곤할 때는 그 두꺼운 사전을 베고 잠을 잘 수도 있다." (황현산, , 난다, 2024, p.83) '연세대 한국어 사전'의 편찬 위원이셨던 이상섭 교수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나 그분이 하신 이야기에 공감했고 재미를 느꼈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두꺼운 사전에 관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종이책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읽었다. 나는 전자책 읽기에 여러 번 실패했고 또 책을 좋아..

Salon 2025.04.17

객관화

2025년 4월 5일 토요일 / 어제 탄핵 선고를 들었다. 울컥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79)  이 생각에 동의한다. 인생이란 남의 일로만 여기던 것들이 나의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차차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 말이다. 김연수 소설가가 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맴돌았던 말이다. 그가 한 말의 전문은 이러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Salon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