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에세이 436

공감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 시야를 넓게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인간은 공감하면서 우주와 함께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공감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과학을 만들어냈고 과학으로 우주를 측정하기 시작하자 무의식도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인간에게 우주는 측정과 분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공감과 참여의 공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인환, , 난다, 2020, p.236)  흥미로운 접근이다. 태초에 인간에게 무의식은 없었(을지 모르)는데, 그 무의식은 인간이 과학을 만들어내고 그 과학으로 우주를 측정하면서부터 출현했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트, 융, 라캉 등의 업적으로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이 보편화되..

Salon 2025.03.14

애도

2025년 3월 6일 목요일 / 갑작스러운 업무 토스로 살짝 멘붕 "사랑은 바르트에게 관계, 즉 '맺어져 있음'이다. 사랑의 상실은 그래서 이 맺어짐의 끊어짐이다. 맺어졌던 것이 끊어지고 나면 끊어진 자리가 남는다." (김진영)  (롤랑 바르트, ,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8, p.269)  웃긴다. 누군가의 장례를 정성스레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가족 장례의 참석자가 되어야 한다니. 인생 참 알 수 없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서울살이를 하며 10년 동안 함께 살던 할머니가 떠나가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하지 못했다. 산다는 게 다 서로를 속속들이 챙기지 못하며 산다는 건 줄 알면서도 후회가 남는다. 어른들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라고 말하지만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후회할 일을 만..

Salon 2025.03.06

인간의 사랑

2025년 3월 2일 일요일 / 내가 누군가에게 어른의 형상을 보였다니  "지독한 악취에 기절하려고 하는 애인에게 시인은 종부성사를 끝내고 무성한 풀꽃들 아래 백골들 사이에 누우면 우아한 그대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그친다면 이 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너무도 흔한 개념을 전달하는 교훈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마지막 연에 담아놓았다. 시인은 아름다운 애인에게 그대의 몸에 곰팡이가 슬고 구더기들이 키스를 퍼부을 때 그대의 품이 해체되더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나는 내 사랑의 형상과 거룩한 본질을 간직해두었노라고 그 구더기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김인환, , 난다, 2020, p.183)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Salon 2025.03.02

영감의 원천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 괜히 마음이 어수선한  "세상 사람들이 작품의 원천이나 집필 배경을 모른 채, 단지 아름다운 작품만을 접한다는 것은 확실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주 혼란에 빠지거나 깜짝 놀라서 훌륭한 작품의 효과를 없애 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 , 박동자 옮김, 민음사, 2023, p.82)  예술가와 작품을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이 둘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생명은 부모에게서 왔다. 그런데 예술가 개인의 삶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그의 작품이 욕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어쩌면 예술가의 위대한 작품이 누군가 불만족한 그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 때..

Salon 2025.02.22

사랑

2025년 2월 21일 금요일 / 감기약이 좀 받는 듯한 날  "(...)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이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 는 신이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 , 박동자 옮김, 민음사, 2023, p.80-81) 사랑에 대한 논쟁은 늘 뜨겁다. 지나간 사랑을 두고 봤을 때, 사랑은 '더' 사랑했던 사람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는가, 그보다 '덜' 사랑했던 사람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는가. 답은 정해져 있다. 전자일 테다. 그러나 이별을 경험한 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이 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시점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려나. 그것도 미지수다. 정희진 작가는 "모든 예..

Salon 2025.02.21

단순한 진리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 지긋지긋한 콧물과 목감기  "아니제. 하늘 사람인 아해들은 이미 큰 인물이제. 자기 안의 하늘을 보고 서로 안의 하늘을 보고, 각자가 가진 은사를 써서 도우며 사는 게 홍익인간이제. 그라믄 세상도 좋아지는 것이제." (박노해, , 느린걸음, 2024, p.51) 평범한 이 문장이 왜 가슴에 와닿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문장이 (잠시) 욕심을 내려놓게 했기 때문이다. 큰 인물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동네 어르신은 이미 아이들은 큰 인물이라며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혼잣말로 일침을 놓는다. 어르신의 이야기는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원래부터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여 잘 다듬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리고 자신을 잘 다듬는다는 ..

Salon 2025.02.20

무시

2025년 2월 7일 금요일 / 평안 뒤에 감춰진 분주함 "한밤에 앉아서 나를 무시한 사람들과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나는 화내는 대신에 무시받음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시받을 만한 면이 내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화를 낼 이유가 없으며 무시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일부러 피할 것도 없다. 그들을 모두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될 정도로 고립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병든 아이들이 친하듯 서로 통하는 것이 우정이라면 그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인환, , 난다, 2020, p.66-67)  별것 아닌 이야기 같지만 엄청난 통찰이다. 사람은 무시당하는 걸 싫어한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부터의 무시는 더 견딜 수 ..

Salon 2025.02.07

시끄러운 세상

2025년 1월 23일 금요일 오랜만에 끄적끄적 복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든 사람이 각각 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시끄러운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은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 나는 우리나라의 정부당과 반대당이 그런 레디메이드 유형을 따라가지 말고 대중을 이끌고 나가려고 하는 대신에 다 말하게 하고 나중에 갈피 지으면서 대중을 뒤따라가는 화백당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인환, , 난다)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에 관해 회의감이 든 적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자리를 덜 가질 생각이었다. 말할 기회를 주자 굳이 할 생각이 없던 말까지도 끄집어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입을 닫고 있던 적이 한두 ..

Salon 2025.01.23

신의 말(재발행)

"말하는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없다. 신이 파악되지 않는 존재인 것은 인간이 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한한 신의 말이 유한한 인간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승우, ) 성서는 완벽하지 않다. 성서를 기록한 저자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시대, 자신의 인식, 자신의 한계에 예속되어 있다.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서는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달리 방법이 없으시다. 인간에게 말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본래 뜻의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그..

Salon 2024.11.27

무한함(재발행)

"당신의 무한하신 말씀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나의 유한한 세계 안으로 들어오되, 내가 살고 있는 유한성의 비좁은 집을 부수지 않고 그 안에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칼라너)  좋은 기도문을 꾸준히 읽어야 할 이유이다. 칼 라너는 신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다. 만약 인간에게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또 한계가 없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진다.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인간 안으로 들어올 때 인간은 버틸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거나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무한한 것을 유한한 세계에 맞아들일 때는 요청이 필요하다.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내 세계 안에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말이다. 신의 말을 받아적고 신의 ..

Salon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