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Essay 317

[에세이] 알베르게의 추억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내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 그는 그리스의 섬 몇 군데에서 잠시 살았는데, 지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크레타 섬에 있다. 하루키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리스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념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 전혀 해수욕을 할 수 없어도 목욕탕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도 호텔 주인이 전혀 ᄇ..

Essay 2020.12.14

[에세이]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변한다는 사실은 멈춰 서서 과거의 시간을 돌아볼 때에라야 깨달아진다. 월요일 늦은 오후. 약속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자주 가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 머물며 변하지 않는 시간에 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걱정에 가까운 생각들. 이렇다 할 문제없이 편안하고 적적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위태로운 고요함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존재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길었던 단독의 시간. 누구 하나 부담을 주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해 불안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던 시간들. 그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주어진 시간에 충분히 깃들지 못하고 낙오되지는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던 시간들. 그 길었던 5년의 시간이 끝이 났다. ..

Essay 2020.12.07

[에세이] 잊을 수 있어 좋았던 제주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타인에 대한 비판이 매일을 가득 채웠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계속 쫓아다닌 생각들. 직면하자니 숱한 감정들이 차오른다. 피하면 먼 길을 돌아, 돌아온다는 믿음 때문에 피하지 않고 바라보려 했던 내 안의 솟아나는 감정들. 상황은 유동적이고 그 상황에 맞춰 감정도 계속해서 바뀌어갔다. 그러다 피하는 것도 싸움의 일부라는 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제주의 시간은 자책과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리두기의 시간이었다. "위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선한 싸움을 이끄는 동안 이 말을 결코 잊어버리지 마세요. 또한, 공격을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것도 싸움의 일부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다만 싸움에 속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에 마비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죠."..

Essay 2020.11.22

[에세이] 진심이 통하지 않은 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이 어려움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삶이라는 게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애썼지만 마음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날이 있다. 진심을 다했지만 그 진심이 통하지 않았다면 그건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모르겠다. 모든 속 마음을 다 꺼낼 순 없지만 그렇다고 안 꺼내자니 이야기가 계속 맴돌기만 한다. 어떻게 꺼내느냐가 중요하다고? 그럼 그 '어떻게'를 가르쳐달라. 말로 전할 수 없다고 말할 거면,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 나으리라. 당신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세상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는 건가. 잘 맞지 않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나. 잘 맞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가면 잘 맞아질 수 있는 건가. 잘해보려 해도 자꾸 어긋나는 관계는 어떻..

Essay 2020.11.01

[에세이] 한강변을 뛰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다

한강변을 뛰다가 힘든 몸에 긴장감을 줄 어떤 도구가 필요함을 느꼈다. 음악이었다. 그래서 평소 잘 듣지 않던 아이돌 노래를 듣게 됐고 이 친구들의 음악이 몸에 텐션을 주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여러 날을 별생각 없이 뛰다고 오늘 굉장히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의 저작권에 관한 생각이었다. 곡 하나 잘 써서 인기를 끌면, 노래 한 곡으로도 엄청난 수입이 생긴다는 생각이었다. 요즘은 개인 방송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졌는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노래를 쓸 경우에는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예술. 노래. 저작권. 신고. 노래 한 곡이 수입원이 되고 그렇기에 누군가 함부로 그 노래를 개인적으로 취할 때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스템. 잘 체계화된 것 같지만 바람직한 세상인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Essay 2020.10.12

[에세이] 견주어보며 걷는 길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개념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으며 때론 사람도 그러하다. 나는 친구 녀석이 가리킨 나무를 보며 은행나무라 말했고, 어이가 없다는 듯 녀석은 이 나무는 은행나무가 아닌 플라타너스라고 말했다(사강 때문에 특별해진 “이 플라타너스”). 비교해보니 알겠더라. 개체로 있을 땐 잘 모르겠던 것이 비교를 통해 개별성이 드러나ᄀ..

Essay 2020.10.08

[책] 단순한 행복

죽음을 맞는 순간 한숨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한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였던가. "나는 내 인생에서 자그마한 집 한 채와 아내와, 잎사귀가 쪼글쪼글한 박하나무 화분 하나, 이렇게 세 가지밖에 바라던 것이 없었지만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노라" 인생이란 너무도 이상해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Essay 2020.10.04

[에세이] 모기에 담긴 추억

가을이 오면 모기가 극성이다. 알람도 한 번에 깨우지 못한 이 무거운 몸뚱이를 모기는 단번에 일으킨다. 귓가에 왕왕대는, 평생 익숙해질 수 없는 그 기묘한 날개소리의 힘은 가히 대단하다. 대체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나, 모기의 유입경로를 찾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 길어지면, 집안을 완전히 밀폐시키고 에프킬라를 잔뜩 뿌려놓은 뒤 산책을 나갔다와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모기 포획방법은 어렸을 때 엄마, 누나와 함께 늦여름 저녁마다 하나의 의례처럼 행했던 방법이었던 게 생각이 났다. 모기가 추억 하나를 불러온 것이다. 단잠을 자기 위해 집안을 에프킬라로 가득 채운 뒤 산책을 나갔다 왔던 그 시간들을 가을 모기가 물고 온 것이다. 살다 보면 잊혔던 옛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잊은 줄..

Essay 2020.09.30

[편지] 사강이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

당신은 판단하기를 윈치 않았기 때문에 정의를 큰 소리로 비난하지 않았고, 칭송받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영광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당신 자신이 관대함 그 자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관대함을 환기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끊임없이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당신은 검소하게, 금기 없이, 글쓰기의 파티 말고는 떠들썩한 파티 없이 살았어요. 사치 없이 살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고, 매혹하고, 매혹을 받고, 모든 분야에서, 속도와 지성과 광휘와 당신의 친구들을 추월하고,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눈치채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돌아선 우리 시대의 유일하게 정의로운 사람, 유일하게 영예로운 사람, 유일하게 관대한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무관심해지는 것보다는 이용당하고 놀림당하는 것을 더 ..

Essay 2020.09.27

[에세이] 낯선 이와 함께 가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특정한 경험 속으로 들어가면, 평온한 일상에서의 자신이 아닌, 특별하고 낯선 이가 출현한다. 아니다. 기억이 난다. 이전에 만났던 익숙한 이가, 잠들어 있던 이가 스멀스멀 출현한 것임을. 잠시 외면했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바뀐 것은 없지만, 여전한 그이지만, 돌아온 걸 환영하고,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신을 내려놓고, 이전의 네가 아닌 솔직하고 예의 없는 모습으로 가거라. 이작가야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사랑 💜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기억의 저장소..

Essay 2020.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