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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누군가 내려준 커피

 

 

묵혀둔 영화 <카모메 식당>을 봤다. 카모메.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했다.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국내 식당 <카모메 식당>을 몇 번 가 본 적은 있으나 상호명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주먹밥 만드는 음식점 정도로만 생각했었으니.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주인공 사치에가 키운 뚱뚱한 고양이가 핀란드의 뚱뚱한 갈매기를 통해 식당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잔잔한 서사와 파스텔톤의 영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는 차분함 가운데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를 붙잡아 끄적여 본다.

<카모메 식당> 자리에서 일했던 전 식당 주인이 <카모메 식당>을 찾아왔다. 조용히 커피 한 잔을 시켜 먹더니, 사치에에게 더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명량한 성격의 사치에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라고 답한다. 원두의 양과 뜸들이는 방식을 조금 바꾸더니 커피 한 잔을 내려준다. 맛과 향을 본 사치에는 같은 원두지만 완전 달라진 맛을 보며 몹시 놀라워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냐며 얼떨떨해 한다.

“맛있죠?” 그는 말했다.
사치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커피는 다른 사람이 내린 게 더 맛있는 법이죠.”
이 말만 남기고 그는 조용히 사라졌다.

커피를 내린 방식의 변화가 분명 맛의 변화를 가져왔을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나를 위해 누군가 내려준 커피에 있었다. 몇 해 전, 카페에서 일할 때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카페에서 오랜 시간을 일해온 그녀는 알바생에게 카페모카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이런 말을 꺼냈다. 항상 손님을 위해 커피를 내렸고, 나를 위한 커피는 늘 내가 내려 마셨었는데, 다른 누군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셔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로서 그녀를 위해 커피 한잔 제대로 내려주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가장 맛있는 커피는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내려준 커피였다. 같은 커피지만 분명 다른 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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