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Essay 317

[에세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와 눈에 띄는 시 한편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처음 읽어본 그의 시는 잔잔하지만 강렬했다. 일본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아이다 미쓰오’의 시다. “그토록 강렬한 삶을 살았으므로 풀은 말라버린 후에도 지나는 이들의 눈을 끄는 것. 꽃은 그저 한 송이 꽃일 뿐이나 혼신을 다해 제 소명을 다한다. 외딴 골짜기에 핀 백합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꽃은 아름다움을 위해 살 뿐인데, 사람은 ‘제 모습 그대로’ 살지 못한다. 토마토가 참외가 되려 한다면 그보다 우스운 일 어디 있을까. 놀라워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지. 자신을 우스운 꼴로 만들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제나 강한 척할 필요는 없고, 시종일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할..

Essay 2018.02.22

[에세이] 기품은 몸에서 나온다

“여유는 마음에서 나온다. 가끔 불안에 시달릴 때도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바른 자세를 통해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하려는 육체적인 기품은 겉모습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중략) 단순하고 절제된 동작일수록 아름다운 법이다.” 파울로 코엘료, , 문학동네, p.148 먼 길을 돌아왔다. 중학교 CA 이후 멈췄던 시간이 다시 눈앞에 도래했다. 볼링(bowling)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말이다. 물론 그 시작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깊이는 느긋했다. 볼링을 향한 지인의 열정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내 몸에 옮겨 붙는다. 그 양반 덕에 그간 잠재되어 있던 열정을 분출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게 됐고 구성원은 강요가 아닌 자율과 적절한 긴장 속에 탄력을 받게 된다. 어떤..

Essay 2018.02.08

[에세이] 혼자 떠나는 여행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나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시안으로 데려갔던 감각과 즐거움이 되살아났었다. 그때 나는 혼자서 하는 여행이 만남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영혼들은 서로를 어루만지고, 우정(우정은 일시적이지만, 어쩌면 일시적이기 때문에 여행에 동력을 불어넣는 연료가 될 수 있다)이 샘솟는 이 순간이 좋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 효형출판 일흔이 훌쩍 넘은 노인 ‘베르나르’가 리옹에서 이스탄불까지 걷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작년 생각이 났다. 지난 해 5월, 난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적 없는 미지의 땅을 걷고 있었다. 여행 혹은 순례 준비를 하며 함께 떠날 파트너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당시 그것보다 나를 더 사로잡고 있었던 건 이 모든 일을 홀로 감당해 보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

Essay 2018.02.08

<삐딱하게 사랑보기> 1. 운명의 짝은 어디 있을까?

1. 운명의 짝은 어디 있을까? 얼마 전, 남녀 구분 없는 한 무리와 만나 신나는 토론을 했다. 물론 모임은 서로 안부를 묻는 아주 가벼운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가벼움이 무거움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 이야기는 어떤 모임에도 빠지지 않는 ‘프로 참석러’지만 청춘들 사이에는 더욱 절실한 필수 아이템이다. 사건의 발생은 아주 갑작스레 일어났다. 그날 모임의 참석자 중 두 명의 친구가 연애 중이었고 두 친구 모두 연애기간은 길지 않았다. 모임 내내 잠잠하던 한 친구가 연애의 지속성에 관한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그의 질문은 좀 뜬금없었다. “나 자신을 잘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그 질문자의 연애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상대..

Essay 2018.02.03

[에세이] 걸음걸이와 사람

나는 성격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걸음걸이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는 걷는 사람들의 뒤태만 계속 보여주다가 그들의 실제 모습과 비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관상가는 아니지만 뒷모습만 봐도 중국 사람인지, 네덜란드 사람인지, 남아메리카 사람인지, 북아메리카 사람인지 맞힐 수 있다. 또 팔자걸음으로 걷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파리지엔느인지, 음흉한 사람인지, 맺힌 게 많고 소심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 효형출판, p.91 가끔, 길을 걸을 때나 지하철을 환승할 때, 앞서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본다. 아니, 보곤 한다. 어떤 사람은 보폭을 큼직큼직하게 하며 씩씩하게 걷고 어떤 사람은 신발을 바닥에 끌며 소리라는 입자 진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어떤 ..

Essay 2018.01.24

[에세이] 여행이란

“관상이란 낯익은 것들을 낯선 눈으로 다시 보는 데서 발생한다. 이를 위해 때때로 우린 일상을 벗어나 있을 필요가 있는데,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도시에 살 때 특별하지 않았던 사소한 사물마저도 시골에 와서 살다보면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기도 한다.” ‘서울이 맞나?’ 가끔 어떤 지하철역에 내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서울의 모든 역을 가 본 건 아니지만 어떤 지하철은 내리면 꼭 서울이 아닌 듯 한 느낌을 준다. 다른 역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거나 시야가 트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역에 가만히 서 있자니 낯선 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다. 막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순례의 여운을 가슴 가득 채워온 그녀는 더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할 지 ..

Essay 2018.01.16

[에세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거푸집에 얼굴을 넣었다가 그 표정을 고스란히 상황 속으로 가져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장례식장에 들어갈 때다. 특히 유가족을 맞이할 때 나의 표정은 자기 멋대로 춤을 춘다.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를 띠어야 하나? 아니면 무겁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하나? 오랜만에 만난 벗이 유가족 가운데 있기라도 하면 반가움의 미소부터 흘러나오니 이 난감함을 어찌해야 할까.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님을 경험한다. 표정은 분명 내가 지었는데 정확히 나만 빼고 모든 이가 본다. 그런데 이 표정은 슬픔과 반가움의 감정이 뒤섞일 때 제멋대로 춤을 춘다.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고인에 대한 슬픔과 여전히 잘 살아있어 줘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유가족에 대한 반가움이 하나의 얼굴을 두 개의..

Essay 2018.01.03

[에세이] 나만 아는 장소, 부퍼탈(Wuppertal)

누가 내게 물었다.    혹시 나만 알고 있는 그런 장소가 있나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괜히 그리워지는 그런 장소 말이에요. 질문을 받고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런 곳이 있었나? 여행지부터 떠올려봤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나 밥집, 카페, 해변이 떠오르긴 하나 그곳은 워낙 유명한 곳들이라 선뜻 제주가 그곳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 번 이상씩 가봤던 라오스나 일본의 어느 동네가 그런 곳일까 떠올려 봐도 잡히는 게 없다.    질문을 받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은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그런 곳이 될 만한 장소가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일탈하듯 가게 된 독일의 부퍼탈(Wuppertal)이 ..

Essay 2017.12.19

[에세이] 잘 늙고 싶다

영원히 청춘이고 싶다. 몸은 늙지만 마음 만큼은 청춘이고 싶다. 그래서 영원히 청춘이고 싶었다. 자주 이렇게 되뇌곤 한다. 사진 속 내 모습을 본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사진을 본다. 시간의 직격탄을 홀로 맞은 느낌이다. 웃을 때의 주름과 피부의 생기는 다 어딜간걸까. 휴대전화의 카메라와 디카의 발전이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최근 읽은 책 속의 한 문장이 딱 내 얘기 같다. "가끔 그는 한밤중에 온욕을 한 뒤 불빛 아래서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노화는 피곤해 보이는 것과 좀 비슷하지만, 잠을 아무리 자도 회복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할 것이다. 올해의 이른바 못 나온 사진이 내년에는 잘 나온 사진이 된다. 자연의 친절한 속임수는 모든 일을 천천히 진행시켜 우리를 상대적으로 덜..

Essay 2017.12.03

[에세이] 사람은 사랑을 원한다 in 후쿠오카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일본. 섬나라를 다시 밟은 게 얼마만인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여기가 일본임을 느낀 건 왼쪽에 있는 운전석 때문이다. 들리는 일본어보다 운전석 영향이 더 컸던 건 그만큼 한국 관광객들로 인한 한국말의 범람 때문이다. 한인 무리가 공항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함께했으니. 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준비되지 않은 부분을 자극한다. google 지도에서 먹고 마실 곳을 검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게 된다. 잘 알려진 곳의 후기를 쓴 사람은 대부분 한국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이 ‘역시 일본사람들은 친절하다’, ‘생각보다 덜 친절한 것 같은데’, ‘일단 일본 직원은 친절하다’ 등의 말들을 적어놓는다. 오호리 호수를 거닐 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친절이 몸에 밴 걸까..

Essay 201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