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Essay 317

[에세이] 가을비 그리고 물구덩이에 담긴 추억

어릴 땐 비오는 날 발견한 물구덩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그 안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을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발을 풍덩풍덩 담근다. 만약 그날 신은 신발이 장화였다면 흥은 더욱 주체가 안 된다. 물론 그로인해 빨랫감이 늘어난 엄마의 얼굴은 더 굳어갔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는 게 너무 많다. 신비함, 경외감, 놀라움이 갈수록 줄어든다. 삶의 모든 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걸까 생각해 본다. 슬라보예 지젝은 앞으로 맞이할 시대의 위험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보며 놀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길에 물구덩이가 생겼고 혹 신발이나 바지 끝단이 젖을까 신경을 곤두세워 피한다. 물구덩이에 올챙이는 없나, 혹시..

Essay 2017.11.10

[에세이]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알셀름 그륀(anselm Grun) 신부의 말이다. 그는 야곱의 모습을 통해 한 남자가 전형적인 어머니의 아들에서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을 포착해 낸다. 이렇게 본다면 참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당연한 운명은 아닌 듯하다. 그는 야곱을 통해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핀다. 신부는 말하길 처음의 야곱은 전형적인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어머니의 아들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가? 그는 우선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단계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 그는 어머니의 생활 영역에서 떠나는 것, 형을 피해 도망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두고 그륀 신부는 야곱이 자신의 그림자를 피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떠남’은 어머니의..

Essay 2017.10.26

[에세이] 사랑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자리, 무릎

에서 이효리가 아이유에게 네가 만든 노래 중에 가장 네 마음 같은 노래가 뭐냐고 묻자 아이유는 ‘무릎’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마음이 가장 잘 담긴 노래라기에 호기심에 찾아봤다가 거의 매일 밤 이 노랠 들으며 잠을 청하게 된다. 이효리가 아이유에게 불면증이 만든 노래라고 장난쳤던 것처럼 이 노래에는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잠 못 이룸이 담겨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노래 속 주인공은 모두가 잠든 밤,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 깨어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나 아니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나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노래 속 주인공은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주고 그 좋은 손길로 인해 잠..

Essay 2017.10.19

[에세이] 가을 속 지기춘풍

가을이네, 은행이 걷는 길목마다 가득 차 있는 가을이다. 일찍 해가 지기에 일찍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떠나는 그런 계절이다. 그래, 머리도 많이 빠지는 그런 가을이다.  가을이란 단어를 메모장 검색란에 쳐본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대인춘풍 지기추상’에 관한 짧은 각주가 검색된다. 선생님은 이 붓글씨에 관해 설명하시길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한다 하신다. ‘자신을 다룸에 엄격해야 한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자신에겐 엄격하며 동시에 남에겐 관대한 것이 가능한 일이긴 하려나. 대인춘풍 지기추상이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그 일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엄격이란 말은 왠지 정이 가질 않는다. 엄한 환경에서 자랐..

Essay 2017.10.13

[에세이]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행동

가끔 동기랑 코인 노래방을 간다. 전에 코인 노래방은 오락실 저 안 구석에만 있던 조금은 소외된 장소였지만 지금은 노래방 전체가 코인 노래방인 곳이 많다. 집 근처에서는 카페 가서 책보는 일 말고는 밥집도 잘 모르는 나이기에 우리 동네 탐방 온 동기 덕에 집 근처에도 코인 노래방이 있음을 알게 됐다. 1,000원에 세 곡을 열창하고 나온 나를 보며 친구는 가끔 혼자라도 여기 와서 노래 부르면 참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무슨 개똥같은 소리냐고 나는 단박에 그의 말을 끊는다. 그리고 오늘 밤, 예언자 동기의 그 말이 무섭게 나를 코인 노래방으로 인도하더니 어느 덧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기계에 넣고 있다. 몹시 피곤한 하루였지만 자정이 다 되어가는 그 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어떤 욕구에 사로 잡혀 ..

Essay 2017.09.25

[에세이] 뒤통수와 미용실

이발 할 때의 기준이 뒷머리의 길이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뒷머리를 거울로 비춰보았는데 정리도 안 되고 보기도 싫어 곧장 미용실로 향했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로 옮기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동네 미용실 디자이너 선생님께 조금 전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자 뒷머리가 무슨 상관이냐며 사람들은 주로 뒷모습보단 앞모습을 보고 머리 자를 때를 판단해 온다고 했다. 나도 늘 그래왔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뜬금없이 뒷머리가 보기 싫어 미용실로 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늘 당연하게 여겼는데 그날따라 디자이너 선생님의 대답이 새롭게 들렸던 건 왜일까. 사람이라는 존재가 본모습보다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좀 서글프고 답답해서였을까. 사실 ‘앞모습’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 비춰지고 싶..

Essay 2017.09.18

[에세이] 살아보는 거다

자신을 향한 부정의 언어를 거두는 게 필요하다. 이 말은 스스로를 향한 자책의 언어를 육체의 고통으로 바꿨을 때 그 고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방금에 한 말이 한 가지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데, 그 때가 언제냐면 릴케가 말한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경우’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랑은 뭐지? 신은 또 뭘까? 삶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야? 생기를 잃은 셀프 탁상담론이다. 작가 이승우와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토르의 뿅망치를 날린다. 이승우 작가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겪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 그의 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즉 그가 곧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물을 이유가..

Essay 2017.09.07

[에세이] 나는 당신을 모른다

개그맨 신동엽은 어떤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말을 남겼다. 그는 모르는 여성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모르는 여성? 모르는 대상을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평범한 아재의 원색적 발언이라고 하기엔 심오한 뭔가가 있어 보인다. 이승우 작가는 그의 최근 소설 에서 아는 사람은 편하지만 매혹의 대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은 편하지 않지만, 때때로 매혹의 대상이 된다. 아는 사람이 매혹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으로의 변신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말이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아는 듯 하고 알 것 같은 대상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내 분수를 모르지 않지만 이런 일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

Essay 2017.08.30

[에세이] 걷는 게 좋다

걷는 게 참 좋다. 대체 걷는 게 뭐가 좋은 거지? 어제 나만큼 걷는 걸 좋아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세 번 다녀왔고 최근 입국한 까미노계의 요정은 1200Km를 걷고 왔단다. 존경한다. 사실 나는 면허가 있지만 운전할 기회가 없어왔고 무엇보다 운전에 대한 매력을 못 느꼈던 터라 모든 여행은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까미노까지 이어졌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 걷는 행위에 대한 정의 가운데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걷는다는 건 나누어진 땅을 깁는 행위라는 말이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스페인 북부의 마을을 두 발로 잇긴 했지만 그러한 연결고리가 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Essay 2017.08.30

[에세이] 책 앞의 유혹

대학로에서 점심식사가 있고 난 후다. 곧 있을지도 모를 친구와의 약속에 선물하고 싶은 책이 떠올라 서점을 찾아본다. 커다란 서점은 알라딘 밖에 없는 현실. 선물로 중고책을 주기는 좀 미안하기에 패스! 한 해에 한 두 차례 가던 독립책방 이 떠오른 건 그 시점. 아담한 서점이라 찾는 책이 없을 걸 알았지만 일단 가보는 걸로. 여름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터라 지하로 내려가는 서점의 기온이 후텁지근하다. 이젠 깔끔하고 상쾌하기만 대형서점에서 맡을 수 없는 이 냄새. 냄새가 정겹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구매욕 마구 상승한다. 유혹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목적이 이끄는 곳으로 가야한다. 찾는 책이 있을 법한 분야로 가서 한참을 두리번거려도 그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큰일이다. 이러면 목적을 잃고 다른 유혹에 빠..

Essay 2017.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