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비오는 날 발견한 물구덩이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그 안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을 지나가선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발을 풍덩풍덩 담근다. 만약 그날 신은 신발이 장화였다면 흥은 더욱 주체가 안 된다. 물론 그로인해 빨랫감이 늘어난 엄마의 얼굴은 더 굳어갔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는 게 너무 많다. 신비함, 경외감, 놀라움이 갈수록 줄어든다. 삶의 모든 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걸까 생각해 본다. 슬라보예 지젝은 앞으로 맞이할 시대의 위험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보며 놀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길에 물구덩이가 생겼고 혹 신발이나 바지 끝단이 젖을까 신경을 곤두세워 피한다. 물구덩이에 올챙이는 없나,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