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Essay 317

[에세이] 광장을 외면하지 못하는 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어도, 웃으며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어도, 책을 읽고 있어도, 다음 날 이른 아침 스케줄 부담으로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고 있어도 불편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빠듯할 일정 때문인지 몰라도 광화문 광장을 잊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날도 추운데다 토요일 저녁을 집에서 편히 쉬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애써 광장에 함께 나갈 동무를 찾지도 않았고 불현듯 찾아온 감기를 핑계삼아 홈보이가 되고도 싶었다. 탄핵 가결이라는 큰 산 하나를 넘은 안도감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계획대로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늦게 집으로 향하는데 불편한 마음을 다룰 길이 없다. 해가 지기 시작한 그 때부터 어떤 생각들이 마음을 계속해서 찔렀다. 아마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었으리라. ..

Essay 2016.12.11

[에세이] 신은 낙원에 머물고 있지 않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몇 주가 흘렀다. 적어도 감사의 표현은 사골처럼 우러날 줄 알아야 그 말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을 텐데 교회 내 감사의 자동판매기식 요구에 우리의 내면은 자주 사골의 앙상한 뼈만 드러내 왔다. 가톨릭 일꾼 금요 세미나에서 엘리자베스 A. 존슨의 책 를 중심으로 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며 아버지께 전화 한 통을 드린다. 간단한 안부를 묻고 무얼 하고 계시냐는 물음에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뉴스를 보신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너도 내일 데모(집회)에 나가냐고 묻기에 3차 집회부터 꾸준히 나가고 있고 내일도 당연히 나갈 거라고 말씀 드렸다. 순간 “어서 끌어 내려야죠.”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왔고, 이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는 그런다고 그 사..

Essay 2016.12.03

[에세이] 잘 늙는다는 건 뭘까

광화문 촛불 집회 참석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밤 12시가 조금 덜 된 시간이다. 할머님은 피곤하셨는지 불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어 계셨다. 조용히 불을 꺼 드리고 내 방에 들어와 보니 책상 위 양말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추운 겨울 손자 따뜻하게 보내라고 예쁜 겨울 양말을 얻어 오셨나보다. 할머니께서는 오래 전부터 종편 방송 중 TV조선을 즐겨 보셨고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그녀를 감싸주는 말들을 자주 하곤 하셨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진 후 JTBC는 물론 TV조선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관계를 앞장서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일과를 마치거나 촛불 집회 참석 이후 집에 들어와 할머니를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Essay 2016.11.21

[에세이] 혁명의 순간, 그 다음날

만나는 사람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를 떠나보내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힘겨워졌다. 그래서 그 사람을 떠나보내려 한다. 첫 연애, 헤어지고 나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몰라 모든 당혹감을 끌어안느라 지독한 어둠을 경험한다. 미안함, 후회, 자책, 변명들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다시 여러 번의 인연을 만나고 헤어짐을 경험한다. 이제 이별 후를 조금은 알듯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상실의 슬픔을 애도하고, 아픔을 직면하고, 또 견뎌낸다. 끝 모를 시간의 반복이다. 사랑은 떠나가도 삶은 계속될 것이기에 다시 힘을 내어 본다. 이별 후의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무엇으로 그 삶을 채울 수 있을까? 다음 세상을 닳아버린 몽당연필로 ..

Essay 2016.11.10

[에세이] 글을 쓴다는 것

누군가 모든 사진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 순간을 사진에 담게 되면 순간은 영원이 되고 또 하나의 의미가 된다. 글을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떠올랐다 금세 사라지는 생각을 붙잡아 기록에 남긴다는 것은 그 생각이 영원이 되는 것이자 새로운 의미가 된다는 것일 테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찍기와 글쓰기는 닮은 구석이 있다. 어제 한 무리와 설교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무리에 계신 한 분을 포함해 개인적으로 아는 몇몇의 지인들은 설교문의 개요만 잡고 중심내용은 현장에서 이야기로 풀어낸다고 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글쓰기(설교문)는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자기 수행의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가능하면 설교의 기승전결을 원고에 모두 담으려 노력한다. 물론 대중 앞..

Essay 2016.11.07

[에세이] 늘 국가비상사태였다

​ 좋은 책 중에 어떤 책은 쉽게 읽히다가 가끔 걸리는 문장들이 드러나고, 또 어떤 책은 거의 모든 문장마다 읽히지 않아 진도가 늦어진다. 글의 종류에 따라 그 길이도 달라지겠지만, 2-3 페이지의 짧은 글이지만 각 문단과 문장의 가시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책이 있다. 정희진의 책이 그러하다. 평소 주위 사람들도 그녀의 글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쉽게 읽히는 것은 속임수'라는 듯 그 말들을 웃어 넘긴다. 이 글을 남기게 된 동기는 그녀가 발터 베냐민의 책을 인용하며 했던 이야기 때문이다. 지금 멘붕(!)에 빠진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내 생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것 같았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국회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이한 듯 정신이 없다. ..

Essay 2016.11.01

[에세이] 빈틈없음

아침이 차다. 서늘한 공기가 몸 한 구석을 파고든다. 채워지지 않는 그 빈 공간을 끌어안고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당장 채워지지 않을 그 온기마저 끌어안고 집을 나선다. 길 위에서 만난 벗들에게 이것이 사람의 문제냐고 물어본다. 그들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사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헛헛함이라 하더라. 그래, 누군가 옆에 있다하여 채워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연인이든, 가족이든, 종교인이든 불현 듯 찾아오는 이 공허함의 시간들이 있다.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채울 수는 있는 걸까. 삶에 무엇을 더 맞아들여야 할까. 걸으며 기도를 드린다. 갑작스런 시간의 출현, 낯선 존재가 불쑥 얼굴을 내밀 때, 찰나를 본다. 채우기 위해 먼저 비워야함을 찰나로 느낀다. 최고 권력자, 누군가..

Essay 2016.10.29

[에세이] 삶의 현존

얼마 전, 평생 남의 빨래를 하며 살아야 하는 도비왈라에 대한 생각을 기록했었다. 당시 나는 그들의 삶이 고달프고 억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마치 어떤 거룩한 정의감에 사로잡힌 듯 말이다. 그러나 인도의 예수회 신부인 앤소니 드 멜로(토니)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 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콜카타에서 만난 한 인력거꾼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인력거를 끌기 시작하면 이 가난한 사람들은 10년에서 12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결핵 때문이다. 그 인력거꾼은 두개골을 고작 10달러 정도에 매매하는 불법 행위 단체에게 죽음 이후 삶마저 넘겨준 상태였다. 더구나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도 있었다. 토니는 그에게 “당신의 미래와 자식들의 미래에 대해 실망스럽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Essay 2016.10.26

[에세이] 슬픔의 가치

인도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어떤 분노와 슬픔에 사로 잡혔다. 네 개의 층위로 구성된 카스트 제도 신분에 속하지 못한 또 하나의 계급, 지워진 존재 '불가촉천민.' 프로그램엔 두 명의 여행자가 불가촉천민으로써 빨래를 직업으로 하는 ‘도비왈라(Dhobiwala)’와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도비왈라는 오랜 관습으로 대를 이어 빨래를 해야 한다. 평생.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자격증과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데, 문명이 주는 혜택의 그늘 속에 사는 천민들이 재능을 발견하거나 자격증을 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제도의 굴레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산다.    인도의 견고한 신분 사회 때문에 분노했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올 수 없는 불가촉천민들의 삶 때문에 슬펐다. 물론 그들 스스로 ..

Essay 2016.10.20

[에세이] 연락

얼마 전,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 무심코 '넌 사람들한테 연락 자주 하잖아?'라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평소의 나는 먼저 연락을 잘 못하는 편이다. 누군가 내 연락을 받았다면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생각만하고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왜 그 말이 기분 나빴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친구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거 같긴 하지만, 쨌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자주 한다는 그 말에, 평소 내가 고독과 외로움을 견딜 줄 모르는 나약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SNS의 거짓된(!) 인간관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지인들보다 저 멀리 일본에 사는 H형, 호주에 사는 H님, 인도에 계신 J선생..

Essay 2016.10.17